ㄴ 논어

논어 팔일 17 / 이래서야 되겠는가

죄송이 2012. 5. 21. 00:32

 

 

子曰 管仲之器 小哉

자왈 관중지기 소재

或曰 管仲儉乎

혹왈 관중검호

曰 管氏 有三歸 官事不攝 焉得儉

왈 관씨 유삼귀 관사불섭 언득검

然則 管仲 知禮乎

연즉 관중 지례호

曰 邦君 樹塞門 管氏 亦樹塞門

왈 방군 수색문 관씨 역수색문

邦君 爲兩君之好 有反坫 管氏 亦有反坫

방군 위양군지호 유반점 관씨 역유반점

管氏而知禮 孰不知禮

관씨이지례 숙부지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관중의 그릇은 의외로 크기가 작았구나

누군가 반문했다. 관중은 검소하지 않았습니까?

말씀하시길, 관씨는 삼귀를 가지고 있었으며 비서관들을 일마다 따로 두었으니 어찌 검소하다 하겠느냐

그렇다 해도 관중은 예를 잘 알지 않았습니까?

말씀하시길, 한 나라의 임금이라야 나무로 마당의 문을 가리는 법인데 관씨 또한 나무를 심어 마당을 가렸고

한 나라의 임금이라야 양국 임금의 모임에서 반점을 쓰는 법인데 관씨 또한 반점을 썼으니

관씨를 두고 예를 잘 안다고 한다면 누군들 예를 모른다고 비난할 수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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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은 환공을 보좌해 부국강병을 성공시켜 당시에 제나라를 춘추5패 중에서도 첫째로 올린 인물입니다.

공자는 여러 차례 관중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만

이 구절에서는 유독 관중에 대한 냉혹한 비판을 가합니다.

 

제자백가 중에서도 관중은 후대에 법가로 이어지는 길을 연 사람으로 평가받는데

유가의 길을 강조했던 공자로서는 뜻과 방법이 서로 맞지 않았을 겁니다.

해서 그런 부국강병을 중심으로 한 '패천하'의 논리를 주장한 관중을 '그릇이 작다'고 평했던 듯 합니다.

 

조금 더 파고들어 본다면,

공자가 생각한 새로운 세상의 질서에서는 현실적으로 무력한 주나라 왕실을 대체해 천하를 안정시킬 제후국이 필요한데

그 방식이란, 대부 등을 비롯한 귀족 질서를 억누르고 능력있는 사(士) 그룹을 등용시켜 보다 폭넓은 정치 기반을 형성하는 것이었을 겁니다.

약탈적인 귀족 정치가 아니라 확대재생산 시스템이 보장되는 질서에 대한 고민이 많았겠죠.

때문에 관중 식의 패업 추진은 근본적인 시스템 변화가 생길 수 없고 안정적인 변화를 추구할 수 없으리라 진단했습니다.

따라서 공자에게 있어서 대부 세력들은 청산해야 할 기득권층이었고

사 세력들은 보다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중용해야 할 신 세력으로 이해되었을 겁니다.

이런 관계로 보면 공자가 강조한 교육의 확대와 예의 강조 들이 모두 이해가 됩니다.

대부 세력의 발호를 막고 주왕을 대신할 현실적인 통치자로서의 제후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는 '예'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위계가 필요했던 것이죠.

이는 마치 중세 유럽의 막바지를 대체해 가고 있던 시민 혁명 세력들과 이들을 동지로 받아들인 절대 군주들의 시도들과 유사한 측면이 있습니다.

 

 

 

 

선생님이 강의를 시작하시기 전에 갑자기 관중을 '그릇이 작다'고 까대시자,

제자 중에서 관중을 변명하는 질문이 이어 나옵니다.

 

관중은 그래도 새는 비용을 줄여서 부국강병에 기여하지 않았냐고 반문한 것이죠.

공자가 논파합니다.

 

'삼귀' ... 란 [설원]이란 책에 보면, 관중이 '삼귀대'라는 큰 누각을 지었다고 했는데,

이것이 몹시 귀족적 취향을 흠뻑 드러낸 건물이었던 모양입니다.

서민들의 세금을 짜 내서 군대를 키우고 땅을 넓히긴 했지만, 기껏 관중도 이런 낭비를 했다는 것이죠.

일설에는 '삼귀'를 '세 명의 부인'이라고 해석하기도 하는데,

누각이든 일부다처제든 귀족적 사치의 일면을 철저히 버리지 못한 모습이었으므로 관중은 검소하지 못했다는 공자의 비난을 피하기 어렵습니다.

 

오늘날 국회의원도 업무를 처리하기 위해 사무관을 둡니다. 대통령은 비서관을 두지요.

고대에선 비용을 줄이기 위해 사무관과 비서관의 수를 제한했던 모양입니다.

때문에 아무리 고관 대작이라 하더라도 사무관을 한 명 이상 두지 못하게 했는데 때문에 해당 비서관은 여러 업무를 동시에 처리해야 했죠.

그런데 관중은 환공에게 부여받은 전권을 발휘해서 각 임무에 맡는 비서관을 여럿 두고 일을 부린 모양입니다.

이게 '관사불섭'입니다.

공자의 해결 방식이란 대부 밑에 사무관을 둘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능력을 갖춘 사들을 각 역할에 임용하면 자연스레 해결될 일이었던 것이죠.

 

 

 

 

 

이러자, 그럼 관중은 예를 잘 알고 있었다는 칭찬이 자자했는데,

그것으로만 보더라도 그 그릇의 크기가 그리 작은 것은 아니지 않냐고 또 반문합니다.

공자는 또 논파합니다.

 

임금은 절대 권력의 정점에 위치한 자로서 자못 비밀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임금이 사는 집은, 대문을 열고 마당을 거쳐 본당에 바로 들어가지 않고 나무를 심어 그것을 살짝 가립니다.

문화 양식이란 것은 본래 아래는 항상 위를 흠모하기 마련이어서

아랫사람들은 임금이 먹는 음식과 임금이 자는 집과 임금이 입는 옷을 탐내기 마련입니다.

요즘도 임금님이 먹던 쌀이라고 광고하고, 임금님이 마시던 음료수라고 선전하면 좀더 잘 팔릴 꺼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고관대작이 집이라도 신하의 집은 임금에게 비밀이 없어야 하기 때문에 '수색문' 따위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관중은 했습니다.

 

두 제후가 만나 회맹할 때, 예식상 서로 술을 나누게 되는데

한쪽이 술을 마시고 나면 '점'이라는 술잔 받침대에 다 비운 술잔을 '엎어' 놓습니다.

그럼 술잔을 다시 깨끗이 씻고 나서 상대방이 먹고 다시 '엎어' 놓습니다.

이런 예절 양식이 바로 '반점'인데 이런 것들은 제후 사이에서나 가능한 것입니다.

관중은 자신도 하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어떤 실무진들 사이에서의 회맹 자리에서 '점'을 준비하도록 해서는 술잔을 권커니 받거니 했습니다.

 

 

 

 

임금과 먹고 자고 입는 것이 동일해지면,

백성들은 환공이 임금인지 관중이 임금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임금의 권력을 가진 이가 임금 말고도 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국가의 미래는 평안을 다짐할 수 없습니다.

신하들의 공복을 제정하고 등급에 맞추어 문양을 달리 하며(복식과 관등 제정)

임금과 조회하는 회당에 오를 수 있는 자(당상관)와 오를 수 없는 자(당하관)를 구분하는 것들 모두가

왕을 정점으로 하는 국가 권력 체계를 유지하려는 부단한 노력들이었습니다.

 

이중에서도 왕만이 누릴 수 있는 것이 각별해야

모든 이와 차별되는, '하늘 아래 유일한 자'라는 인식이 가능해집니다.

 

 

 

 

공자가 반드시 이런 진시황에게나 어울릴 것 같은 왕권 강화를 그린 것은 아니겠습니다만

대부 세력을 억제하려다 보니 왕권을 강화시키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겁니다.

왕권 강화의 가장 강력한 파트너로 사들을 생각해서 부지런히 가르치고 키웠습니다만

공자가 생각한 신흥 사 세력의 등장은 ... 그나마도 많이 왜곡된 형태로 ... 천여 년 후에나 가능했습니다.

 

조선에서 공맹을 그토록 숭앙했던 이유 중의 하나도

사림들로 대표되는 신흥 사대부들은 스스로를 바로 공자가 말한 그 주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의 사림들은 도덕적 청결함은 과잉일 정도였으나,

실무적인 정치 능력이 지나치게 모자란 단점이 없지 않았습니다.

공자가 바란 '사'들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편협했다고 할까요?

하긴 그 사림들조차도 지방에서는 대단한 지주들이었기 때문에

지방에까지 경제적 침탈을 해 오던 훈구파와 사림파의 이해 관계가 극단적으로 충돌하면서 나타난 것이 '사화'였으니

공자의 기준에서 이미 또 많이 벗어나 있기도 했습니다.

 

통합진보당의 해 묵은 문제들은, 그들이 종북주의자이기도 하지만

진보운동에 헌신했다는 외피 속으로 종북을 감추고 학원 재벌로, 뒷돈 받아 챙기는 브로커 짓들로 연명해 온

그들의 이면으로부터 유래된 것들도 분명 한몫 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석기를 비롯한 소위 '당권파'들을 몹시 비판합니다만,

다른 동지들이 인생을 내팽개쳐 가며 이루려고 했던 목표들을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데 소모하고 있는 이들을 단순히 '종북주의자들'이기 때문이라 하기엔 그 이유가 턱없이 부족하며

그들의 진실을 1/10도 제대로 보여주는 것 같지는 않아 마찬가지로 매우 불만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