定公問 君使臣 臣事君 如之何
정공문 군사신 신사군 여지하
孔子對曰 君使臣以禮 臣事君以忠
공자대왈 군사신이례 신사군이충
정공이 물었다 임금이 신하를 대하는 것과 신하가 임금을 모시는 것은 어때야 합니까
선생님께서 답하셨다 임금은 신하를 예로써 대하고 신하는 임금을 충으로써 모십니다
.................................................................................................................
사회에는 여러 관계가 존재합니다.
피로써 맺어진 부모 자식 사이도 존재하고
오랜 만남을 바탕으로 한 서로 이해가 잘 되는 친구 사이도 존재하고
두 눈에 콩깍지가 씌워진 남녀, 부부 사이도 존재합니다.
그 여러 관계들 중에는 상하로 묶인 관계도 존재하기 마련인데
이를테면,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 직원의 관계 같은 것도 있지요.
공자가 말하는 이 이야기는 상하관계에 곧바로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임금은 윗사람의, 신하는 아랫사람의 대표입니다.
얼핏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상하관계를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모범적인 답안은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예로써 극진히 대해야 할 것이며 ...... 로 시작할 것 같습니다만
공자가 제시하는 답변은 거기에서 역전되고 맙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대할 때는 자신의 결정권을 과장되게 생각하기 쉬워서
자칫 아랫사람의 충성만을 강조하고 꼭 지켜야 할 예조차도 잃기 쉽습니다.
따라서 윗사람은 항상 아랫사람에게 예를 잃지 않았는지 걱정해야 합니다.
'예'를 강조해야 할 쪽은 오히려 윗사람입니다.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시키지 않아도 낮은자세를 유지하기 쉽기 때문에
예를 잃을까 두려워하기 보다는
윗사람이 잘못이나 실수를 범하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제 때에 간언하지 못할까를 걱정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윗사람의 역정이나 미움이 두려워, 그것이 불이익을 유발한다고 생각해
충직한 말을 하지 못하고 맙니다. 그리고 그런 비겁함을 '예'라고 포장하기도 하지요.
옳은 소리를 예를 잃어가면서까지도 서슴없이 해 올리는 것이 바로 아랫사람의 진실된 '충'입니다.
子曰 關雎 樂而不淫 哀而不傷
자왈 관저 낙이불음 애이불상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관저'란 시를 보면
즐거운 일이 있어도 넘치지 않고
슬픈 일이 있어도 잃지 않았다
......................................
'관저'란 시에 관해서 알고 싶으신 분들은
'시경 관저'란 검색어로 검색해 보시면 됩니다.
시 원문과 함께 다양한 해석이 나옵니다.
귀찮은 분들께선 ...
다만, "시경 삼백편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사무사(생각에 음란함이 없다)니라"라시던
공선생님의 주의를 먼저 환기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
음란하게 읽자면 한없이 음란한 시들이고
서정성 깊게 읽자면 한없이 다정한 시들입니다.
해석은 각자의 몫입니다.
어쨌든 ... ...
'관저'의 내용은 예쁜 아가씨가 좋은 짝인 군자를 기다린다는 내용인데
사회의 여러 관계 중에서 부부 관계는 그런 오묘한 관계에 해당될 겁니다.
상하의 관계처럼 충이나 예를 본질로 하는 관계는 절대 아니란 말씀이지요.
둘 사이는 오로지 마음만을 가지고 만난 관계인데
따라서 약간의 긴장감이 존재합니다.
생판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오다가 갑자기 어느날부터 한이불을 덮고 자게 된 관계인데
너무 번듯이 예를 따지면 즐거움이 없습니다. 따라서 부부는 한없이 즐기는 게 맞습니다.
다만 그것은 지극히 둘 사이의 개인적인 즐거움이므로 바깥으로 드러내기 어렵습니다.
'음-淫'이라고 하면, '음란하다'라는 의미를 떠올리기 쉽지만 사실은 '물이 찰랑찰랑 넘치는 모양'입니다.
부부 사이의 즐거움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게 좋다는 의미일 겁니다.
살다보면 부부 사이에 어찌 즐거운 일만 있겠습니까?!
더러 다투기도 하고 서운하기도 하고 서로 도저히 용서못할 짓처럼 보이는 일도 생기기 마련이지요.
그런 모든 경우가 '애-哀'에 해당될 겁니다.
그때그때마다 솔직히 대화하고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하고 살면 백년해로하는 부부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고 조금이라도 서로 과하게 되면 이것들이 차차 누적이 되었다가 결국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게 되겠지요.
그래서 '불상-不傷'이라고 했습니다.
'상'은 상처를 내는 것인데,
상처란 본래 살이 패이는 것이므로 '덜어내다'란 뜻도 있습니다.
본래 내 것이었는데 덜어 버렸으니 '잃다'란 뜻도 있어요.
그러니까 살다보면 부부 사이에
사랑을 해치는 많은 고난을 겪게 되는데
그때마다 서로 지킬 것을 잘 지켜서 사랑의 본심을 잃지 말란 말씀 아닐까요?
부부 관계는 세상 만물을 있게 하는 시작으로 인륜의 가장 큰 사안입니다.
그래서 공선생께서는 시경의 가장 첫머리에 '관저'편을 두신 걸 겁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구절을 이리저리 복잡하게 해석한 주자는
바보 멍청이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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