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述而不作 信而好古 竊比於我老彭
자왈 술이부작 신이호고 절비어아노팽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지은 것은 없지만 잘 전하였고 옛것을 좋아하되 현재에도 적용되었으니 은근 우리의 친애하는 노팽 선생과 비슷하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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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 朮'은 풀뿌리가 이리저리 뻗어 내려가는 모양입니다.
거기에 책받침 부수를 더하면 '전해 내려가다' '쓰다' '기록하다'의 뜻이 됩니다.
머리로 외워 전하면 '구술'이고 써서 전해 주면 '서술'이 됩니다.
공자는 말년에 시경과 서경을 편집하고 예기와 악경, 역경과 춘추를 정리하였는데
그 글들이 공자가 지은 것은 아니지만 원래의 뜻을 잃지 않으면서도
후대가 모르는 것을 깨우쳐 주었으니 대단한 작업을 한 것입니다.
'신 信'이라는 것은 '믿음'이지만 '신호'의 뜻도 있고 '약속'의 의미도 있습니다.
서로 맞아 떨어진다는 뜻도 되고 그래서 '통용되다'란 의미도 됩니다.
현대 사회에 살면서 상투를 틀고 살기는 힘듭니다.
상투를 틀면 가운데 머리의 백호를 치고 한번 묶으면 며칠이고 풀질 말아야 하는데
이런 생활을 지금 세상에 하고 살기는 어렵죠.
한다고야 한다면 못할 리도 없지만, 꼭 해야 하는 법도 없습니다.
요즘 세상에 한학을 배우는 사람들 중에는 더러 과거의 것 그대로 외고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던데
남자는 땅 여자는 하늘, 여자에겐 칠거지악, 삼종지도 등과 같은 시대에 맞지 않는 것들만 모아 고스란히 신주 단지 모시듯 해서야
한학을 하면서 세상에 '신 信'을 얻었다고 말하기 힘들게 됩니다.
공자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잊혀진 예와 악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당시에 이미 과거의 것만을 고집하지는 않았으니 이것이 '신'입니다.
'술이부작'과 '신이호고'는 우리말로 풀 때는
뒤에서부터 풀어나가는 것이 이해하는 데 좋습니다.
공자가 자부하려고 했던 내용의 핵심은 '부작'이나 '호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술'과 '신'에 있기 때문입니다.
말하려고 하는 바를 너무 좁게 해석하다 보니
전통적인 풀이들은 앞에서부터 글자를 한자 한자 해석하는 데에만 밝았습니다.
아마도 한문과는 많이 달라진 국어에 대한 이해가 적었기 때문일 겁니다.
한문으로 읽고 한문으로 이해하는 세대들의 국어 사용의 한계는 좀 아쉬운 면이 많습니다.
'노팽'이라는 아저씨는 망해버린 은상의 지혜로운 자였다고 합니다.
'절 竊'은 '훔치다' '절취하다'의 뜻으로 쓰이지만, 원래 의미는 '몰래'라는 의미입니다.
'몰래 하는 것'은 '은근'하기도 합니다.
대놓고는 못하지만 한 수 돌려서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체 게바라는 유명한 혁명가이죠.
민중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 이름에 '체'가 들어갔는데 이게 우리말로 번역하면 '나의'이란 뜻입니다.
누군가 친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을 때
흔히 '우리 아버지' '우리 형' '우리 선생님' ... 등등의 표현을 하기도 하지요.
여기서 '아 我'도 마찬가지로 '나의' '우리의'와 같은 친근한 표현입니다.
공자가 스스로에 대해 자랑스럽고 당당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옛것을 많이 익혀서 그것을 잊지 않고 후대에 전했으며 전하는 데 그친 것이 아니라 현실에 도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중국 정부에서 민중의 문맹률을 떨어트리기 위해
전통적인 번잡스러운 한자를 간소화해서 '간체자'를 보급했습니다.
간체자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번체자를 해체하고 몇 획 밖에 되지 않는 엉터리 글자들을 만들어서 문화를 말살했다고 반대가 극심했었죠.
게다가 우리 글자도 아니고 남의 나라 글자를 남의 나라 사람들이 편하게 쓰겠다고 간략화했는데
우리 나라에서 한학 좀 하신다는 양반들이 오히려 난리를 피우기도 했습니다.
중국의 '간체자'는 막 만든 것이 아니고 철저히 갑골문과 전서, 금서를 고증해서
원래의 모양을 살리면서도 실용성을 파괴하지 않기 위해 천재들이 고안해 낸 결과입니다.
이런 작업이야말로 ... '술이부작'이고 '신이호고'입니다.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함부러 비평하면 안 됩니다.
또한 세사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여 어찌어찌하다 논평을 하였고 후에 그것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으면
곧바로 반성하는 것이야말로 배운 자들이 늘 염두에 두어야 하는 행동양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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