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이 언제 태어 나느냐도 중요하지만
언제 '죽느냐' 또한 몹시 중요한 것 같습니다.
살아서는, 특히 말년에는 이런 저런 행보로 온갖 욕을 다 먹은 그였지만,
'칠푼이' 한 마디를 남긴 덕분이었는지 ^^
현직 대통령의 후광 효과로 비교 우위를 점하면서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부고가 전해지자 모두 숙연한 애도의 분위기로 돌아 서네요.
2.
정치란, 결국 타협의 산물입니다.
누군가의 타협은 용서와 화해, 더 큰 미래를 위한 결단으로 해석될 수도 있고
누군가의 타협은 일신의 안위와 욕망을 위한 야(野)한 것으로 비난받을 수도 있습니다.
박정희의 친일을 포함해서
김영삼의 삼당 합당
김대중의 신자유주의
노무현의 삼성공화국 ... 정권의 스탠스와 그에 대한 비판은, 모두 나름의 양가적인 합리성을 가집니다.
3.
노동당이나 사회당, 녹색당의 향후 10 년 내, 집권 가능성을 0 % 로 전망할 수 있다면
심상정이나 노회찬의 '적정' 타협 또한
집권을 바라보는 어떤 시점에서는, 예견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과거 진정추 시절, 폭력혁명론을 부정했던 이른바 '탄원서 사건'처럼
어떤 식으로든, 다른 정치 세력과의 협력은 '변절'이나 '야합'의 굴레를 짊어져야 하겠죠.
집권의 전략이 없다면
그것은 대중정당으로서의 존립 근거 자체를 훼손하는 것일 테니까요.
지금은, 탄원서 사건을 비판했던 세력들이 오히려 '좌경 맹동주의'로 비판 받습니다.
4.
언제 '죽느냐'라는 것이
한 개인을 평가함에 있어서 우연치고는 꽤 중요한 몫을 차지하는 한 요소가 된다면
하늘이 하는 일이 참으로 공교롭다고 말하기 전에,
작은 일기를 써서라도
하루 세 가지를 반성하는 것이야말로
내가 죽을 날을 굳이 택하지 않아도 되게 만드는, 최고의 비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曾子曰 증자왈
吾日三省吾身 오일삼성오신
爲人謀 而不忠乎 위인모 이불충호
與朋友交 而不信乎 여붕우교 이불신호
傳 不習乎 전 불습호
증선생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날마다 세 가지로 내 행동을 반성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도모하면서 늘 진심이었는지
벗과 교유할 때 미덥지 못하진 않았는지
배운 것을 다 익히지 못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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