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논어

논어 술이 18 / 생이지지자

죄송이 2012. 7. 9. 00:35

 

子曰 자왈

我非生而知之者 아비생이지지자

好古 敏以求之者也 호고 민이구지자야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다

옛것을 배우길 좋아해 부지런히 구해 다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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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사람이나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그 사람이 원래 그렇게 태어난 사람일 것이라고 흔히 착각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세상에 올 때는 모두 백지 상태의 뇌와

채 여물지도 못한 못난 육신을 가지고 태어날 뿐입니다.

 

그 마음과 몸에 부지런히 많은 것들을 새기는 것은 모두 각자의 몫입니다.

 

자신에 대해 늘 찬탄해 마지 않는 제자들에게

공자는 스스로 배우는 것을 좋아해 열심히 공부했을 뿐,

나 역시도 처음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얼마전에 '장병두'라는 무면허 치료인에 대해 확정 판결 비슷한 것이 나왔습니다.

이미 연세가 100세에 가까운데도 정정한 모습으로 괴로운 질병에 고통받던 많은 사람들을 치료했던 모양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를 '현대판 화타'라고 부르거나, '생이지지자'라고 표현하기도 하더군요.

 

문제는 이 양반이 의료 면허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장병두 옹을 옹호하는 사람도 많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양측 모두 자신의 입장에서 논리를 펴기 때문에 그냥 듣고 있다 보면 이 말도 일견 맞고 저 말도 일견 맞습니다.

제가 여기에 보태는 말도 또한 제 나름의 논리이기 때문에 철저히 제 관점에서만 만들어지는 말일 겁니다.

 

저는 '장병두 옹'을 둘러싼 그 많은 말들이

그들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표출하고 있어서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치료를 받았던 사람들은 '장병두 옹'을 신격화하기까지 합니다.

 

그의 치료율은 99 %에 달하고

경신술 등 각종 수행에 근거해 자신을 단련했고 세상의 모든 약초를 스스로 체득하였기 때문에

양방도 한방도 그의 의술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들의 논리 대로라면 장병두 옹의 의술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각종 수행과 수련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장병두 옹 스스로의 말처럼 현직 한의사인 그의 친자식조차 그것을 통과해 내지 못할 정도의 수준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장병두 옹의 의술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장병두 옹 단 한 명 밖에 없는 것이죠.

 

많은 불치병과 난치병으로 알려진 질환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은 그에게 치료 받기를 원하는 것 같고

장병두 옹의 곁에서 모든 신화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 장병두 옹의 치료가

국가에 의해 허락되기를 기대하는 것 같습니다만,

장병두 옹만이 할 수 있는 의술이라면

장병두 옹의 의술을 칭찬하면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세상의 의사들을 욕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장병두 옹에 대한 고발은 한의사협회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의료법 상 아무리, 무허가 의료에 대해서 관리 감독 관청에 신고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하더라도

꼭 협회 차원에서 나서서 고발해야만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장병두 옹이 특별한 스승도 없이 배운 의학으로 3 개월에 고친 환자가 있다면

사실을 확인하고 그것이 맞다면

최소한 우리도 그렇게 훌륭한 의술을 갖출 수 있도록 스스로 분기하는 마음을 갖는 것에서부터

좀더 나아간다면 그의 의술이 좀더 세상에 빛을 볼 수 있도록

한계적인 허용을 갖는 제도적 개선에 같이 힘 쓸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도 해 봅니다.

 

만약 그의 의술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고

치료율이라고 떠들어 대는 것들조차 날조된 거짓말들이라면

하나 하나 밝혀서 처벌하면 그뿐이지만 말입니다.

 

 

 

 

 

' 간절히 원한다 '는 것은 그 욕구의 대상이 무엇이냐에 따라

천박한 것으로 전락할 수도 있고

숭고한 것으로 한 단계 전화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둘러 싼 묘한 논쟁속에는 항상

그 사이에 얽혀든 인간 군상들 하나하나의 묘한 욕망들을 읽어 보게 되곤 하지요.

 

욕망들이 충돌하기 시작하면

정작 그 논쟁의 중심 인물은 주체성이나 온전한 가치를 잃어버린 채

왜 이 논쟁이 시작되었는지 혹은 이 논쟁의 결론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 등의 문제의식들은 실종되고

결국 흉물스러운 '꼴'들만 가득 토해낸 채 흐지부지 정리되고 맙니다.

 

황우석이 그랬던 것처럼 ...

장병두도 또한 그럴 것입니다.

그를 둘러싼 또다른 그들의 욕망 간 충돌이 그들을 그들로 남겨 두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