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비극의시대

[스크랩] 조촐해진 한미 FTA 반대 집회 ... 그 많던 미친소 반대 당시의 인파들은 어디로 갔을까?

죄송이 2011. 11. 27. 12:26


사람들은 '집회'와 '시위'를 혼용해서 부릅니다.

엄밀히 말하면 '집회'란 '2인 이상의 모임'을 이르고

'시위'란 '위세를 보임'이란 뜻이지만 말입니다.

이런 혼용은 물론 지난 시기 격동의 세월을 보낸 대한민국 역사에서 너무나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그때는 '집회'가 곧 탄압의 대상이었고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위, 폭력으로 자연스레 인과되었습니다.

정말 살벌했죠.

지랄탄에 맞서 화염병이 하늘을 날고

쇠파이프가 아스팔트 바닥을 벅벅 긁다가 전경의 방패 위로 내리 찍혔습니다.


당시의 시위는

얼마나 빠르게 모여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앞에서는 사수조가 막고

뒤에서는 조를 짜서 대시민 선전전이란 걸 했지만

사실 그 아마추어적이기 짝없는 선전전을 듣고 있던 시민들이 과연 얼마나 됐을까 싶기도 하고

설령 있다손 치더라도 그 선전 선동에 감동 받아 전두환 노태우 개새끼를 같이 외친

거리의 빵가게 아저씨 이발소 사장님이 몇 분이나 되셨을지 회의스럽죠.




가버린 시대의 막내에는 여럿이 있습니다.

집회 문화도 이제 분명히 한 시대의 종결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지난 미친소 수입 반대 시위에는 연일 수만의 인파들이 서울 거리를 메웠습니다.

어떤 날은 50만명, 어떤 날은 백만명 ...


사람들은 손팻말을 들고

유모차를 끌고

남녀 부부 언니동생 짝을 지어 집회장을 찾았지만

마치 매일매일 새로운 기록을 경신하겠다는 일념이 그들 무의식에 존재하는 듯 했습니다.




그런 현장으로의 집중을 더욱 배가시켰던 효과 장치들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진보신당 칼라TV가 시작한 집회 현장 생중계였습니다.

집회 현장의 생중계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일으켰는데

과거 운동 깨나 했다는 분들에게는 향수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고

평범한 사람으로 살고자 했을 분들에게는

아 시위란 게 저런 거구나~ 크게 위험하지 않은 거구나~ 그럼 나도 나가볼까~ 하는

유인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칼라TV를 비롯해서 민중의 소리 등등 이런 현장 생중계 프로그램들은

정말로 '훌륭한' 선전 선동 도구였죠.


하지만 '훌륭한'이란 수식어는 어떤 시대 앞에 놓이느냐에 따라 보다 빛을 발할 수도 있고

그저 사그러져 가는 구시대의 찬란한 유물로서 박제될 수도 있겠죠.




많은 사람들에게 아직도 집회 현장은 높은 장벽입니다.

경찰 버스가 현장을 둘러 싸고

전투 경찰이 눈빛과 살색도 보이지 않게 완전 무장을 하고 있는데

조만간 물대포가 뿌려질 걸 알면서

마음의 평정을 유지한 채

집회를 감상하고 있을 여유가 많은 사람들의 담에서는 나오기 힘듭니다.


그런 마당에 대고 또 어떤 사람들은

왜 집회에 나오지 않느냐?!

지금 나라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인데 너는 모니터 앞에 편안히 앉아 뭐하는 짓이냐?!

그런 글도 심심찮게 올라오면

정말, 로그인 창에 유령이라도 돼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접속하고픈 심정이 되죠.

나는 누구인가,

여기는 어디인가 ... 이런 해괴한 질문만 해대다 말죠.

가슴 속에는 점점 쌓여가는 자괴감과 

반대쪽 한켠에는 그 크기 이상으로 쌓이는 반발심 ...




그런데,

세상이 정말 변했습니다.

이젠 집회도 SNS를 이용해 참여할 수 있는 시대입니다.

누군가 적절히 중계해주고

쌍방의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만 된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스마트 폰으로 화염병을 들 수도 있고

이메일로 청와대와 한나라당 당사를 타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변하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대중의 선택에 마지막까지 저항하는 독재의 본성 말입니다.

시민들이 스마트 폰을 들면 스마트 폰을 뺏으려고 할 것이고

이메일과 전화로 공격하면 남한의 모든 발전소라도 POWER OFF 시키려고 할 겁니다.


이런 반항은 독재의 본성이기 때문에

형태를 달리해 가지만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보다 더 위험한 것은 우리 스스로의 패배감입니다.

집회장에 사람이 별로 안 왔어,

내 주변에 이 중요한 문제를 인식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어,

사람들은 모두 먹고 살기 바쁘다고 변명들만 해대,

그러면서 변화된 세상에 변화되지 못한 기준을 들이대며 인도의 자이나교도처럼 자학을 강요합니다.




시대의 변화는 많은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듭니다.

제가 학생 시절, 시위 현장에 나갔다가

머리를 노랗게 물들인 후배가 화염병을 던지는 것을 보고 기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저거 말려야 되는 거 아닌가?

나중에 들으니, 저보다 더 한참 선배들은

우리들이 엄숙한 시위 현장에서 발랄 쾌활한 율동을 추는 것을 보고 기겁을 했다고 실토하더군요.


시대는 변하고 그에 따라 문화도 흘러 갑니다.

김 호흡으로 바라보면 언제 들어도 좋은 노래는 없습니다.

조용필의 노래가 백년 천년 갈 것 같지만

지금 이 세상에 관동별곡 읖조리는 사람 하나도 없지 않습니까? 불과 400년전 노래인데 말입니다.

관동별곡이 다 뭡니까, 요새 학도가같은 창가 부를 수 있으면 인간문화재 급 아닙니까?!


시위 문화도 확실히 변하고 있습니다.

참여하고 지지하는 형태가 바뀌어서 그렇지

한미 FTA를 반대하는 대다수 시민들의 마음은 점점 더 모아지고 있습니다.

집회에 안 나간다고

투표소에 안 나간다고

당장 이 인류가 급격한 운동부족으로 인해 비만아로 퇴화할 리 없습니다.


현장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현장을 찾으면 되고

현장을 찾기 힘든 사람은 마음을 보태면 됩니다.


제가 현역으로 할 때는 몰랐는데

복학하고 나서 제일 꼴불견이면서 얼굴 부끄러웠던게

학우 대중들이 박수 해 주는 사이로 쇠파이프 들고 사수조로 나갈 때 그 알량한 으쓱함이더이다 ^^




물론 기우이긴 하겠으나, 혹여라도 이 글이 

오늘도 내일도 열일 제쳐놓고 집회 현장을 찾아 열과 성을 다하시는

민주 시민(^^) 여러분들의 투쟁성을 약화시키거나

이 한미 FTA 반대집회 자체의 참여도를 떨어 트리는 방향으로 해석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출처 : 정봉주와 미래권력들
글쓴이 : 죄송이 원글보기
메모 : 2011 / 11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