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땅콩과자

요즘 ... 2011년 10월 즈음 ...

죄송이 2011. 10. 12. 00:22

1. 모니터 '또' 고장 나서

공중파 수신이 되는 티비 겸 모니터를 샀다.

덕분에 ebs를 볼 수 있게 됐다. ^^

요즘 도올 선생의 [중용] 강의를 해 준다.

[중용]은 [대학] [논어] 마치고 나서 읽어야 제맛인데 .... 어렵다. 귀신 얘기도 많고 ~

[중용] 강의를 서른에 들을 때는 그 의미를 잘 몰랐다.

가끔 티비를 켜고 강의가 들리는 날엔 재밌게. 듣고 본다. 보는 [중용]이라 ^^

 

 

 

2. 가끔 내가 고치지 못한 환자들 생각이 나곤 한다.

미국에 학업을 시작하러 가야 한다고 석달 치료하자는 것을 두달만 겨우 치료하고 간 어떤 여학생.

한약 값이 너무 비싸서 마저 치료하지 못했던 삭신이 쑤신 오십대 아주머니.

지금 생각해보니 복합통증증후군 같았던 미국인 아저씨, 결국 중국행을 택했다.

10년이나 된 구안와사 후유증으로 눈과 코의 불편감, 그리고 볼 주변의 광범위한 마비감을 호소했던 한나라당 지지자.

그리고 ... ...

삶의 목적이 부모에 대한 봉양이었던 한 40세 여성분.

혹은 치료비가 없어서, 혹은 시간이 없어서, 혹은 내 실력이 아직 이 정도라서 

이런저런 불행한 이유들로 치료를 중단했던 사연들이 있지만

가장 가슴아픈 기억은 ... 본인이 치료할 이유를 찾지 못하는 환자였다.

얼마전 동기이자 동생에게 슬쩍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의사를 시작한지 1년 차에는 아무런 정신이 없었고,

2년 차에는 신나게 재미있게 치료했었고,

3년 차에는 두려움이 살짝 들기 시작했고,

4년 차에는 무력감이 찾아오더니 ... ...

그리고 이젠 다시 오기가 생긴다고 !!!

이것을 10번쯤 반복하고 나면 그때 즈음엔 내가 고칠 수 있는 것과 고칠 수 없는 것을 명확히 아는 의사가 되어 있을까?!

중간에 그치지 않고 '능구(能久)'할 수 있다면 언젠가 결실을 보겠지 ^^

 

 

 

3. 화요일은 진료를 쉬는 날이다.

이전엔 더러 책도 보고 공부도 하고 그랬는데 ... 일상은 나를 좀 먹고 좀 먹힌 일상의 구멍들은 나를 물에 젖은 스펀지처럼 더욱 무력한 비계덩이로 만들어 버린다.

모처럼 아내를 졸라 같이 노을 공원에 다녀왔다.

우리는 차가 없다. 택시를 탄다.

메탄을 뿜는 거대한 난지도 쓰레기 더미 위를 억새가 곱게 장식하는 하늘 공원으로 오르는 계단을 밟는다.

아내는 음료수를 사고 나는 15년전 군대에서 특식으로 먹었던 여전히 딱딱한 비비빅을 먹는다.

요즘 하늘 공원에는 바람개비가 없어졌다.

수리중인가? 기둥만 서 있다.

누가 쓰레기 더미 위에 공원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그런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자연의 환경에 자신을 내맡기는 냉온동물과 달리

자신의 체온을 항시 최적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자연을 끊임없이 착취하는 포유류의 정점에 선 인간들의 탐욕의 극한을

이 하늘 공원이야말로 보여 주는 것 같다는 소회로 대화는 끝났다.

 

 

 

4. 하늘 공원을 내려오는 길에 노을 공원으로 넘어가는 길이 이어진다.

인간 탐욕의 끝, '에코 어쩌구'란 수식어가 붙은 맹꽁이 전기차를 거부하고 오르막을 둘이서 지그재그로 오른다.

둘이 오르면 덜 힘들고 혼자 오르면 빠르지만 왠지 우리를 앞질러 가는 자의 뒷모습은 애달프다.

그렇다! 우리는 둘이 서로 눈짓을 교환하며 그를 살짝 조롱하였던 것 같다.

노을 공원은 잔디밭이 많다. 그 잔디는 두 가지를 생각나게 한다.

하나는 섭지코지.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오세훈.

앞으로 당분간은 잔디를 볼 때마다 오세훈이 생각나겠지. 나쁜 넘~

잔디밭에 누워 신발을 벗고 다리를 흔들다가 맨발로 캠핑장까지 걸어 올라갔다.

그리고 캠핑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쳐 노을을 보는 곳으로 갔다.

해가 많이 짧아졌다.

지평선은 벌써 조금씩 붉은 해를 삼키려 준비하고 있었고 반대쪽에선 희-푸른 보름달이 형광등처럼 올라 있었다.

불륜을 저지르는 듯 보이는 중년의 한 쌍이 하산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 뒤를 따라 방방 뛰는 젊은 여인과 그를 불안하게 바라보는 가정이 따로 있는 듯한 또다른 남자가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여기 도대체 분위기가 왜 이러나?!!!

사람들은 도심 한가운데인데도 조금만 환경이 바뀌면 일탈을 꿈꾸게 되는 것인가?!

도시인들은 정말 외롭고 ... 많이도 상처 받았나 보다.

하룻밤을 찐한 사랑을 위해 캠핑할 용기는 나지 않지만 몇 시간의 일탈이라도

스스로에게 융통해주지 않으면 아마도 폭발해 버릴 것이라 다/짐/한 것일까?

 

 

 

5. 우리는 아무 데서나 택시를 타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챈스가 왔고 우리는 신속히 위기를 기회로 잡았다.

퇴근 시간의 혼잡을 피해 다리를 뚫고 망원동으로 무사히 귀환했다.

재미난 날에는 일이 술술 풀리기 마련인가보다.

네 차례의 실패를 딛고 오늘 드디어 '맛있는 돈까지 집'에서 우연히 저녁을 해결할 수 있었다.

주인장이 차려주는 맛있는 스프에 후추를 살짝 뿌리고 ... 후루룩 후루룩~

그리고 햄버그와 안심 돈까스를 하나씩 시켜 서로 돌려 먹는다.

아내가 혹 감기라도 앓을까봐 우동을 하나 더 시켰다.

맛있다.

처음으로 돈까스를 먹고 나서 속이 느끼하지 않다고 느꼈다. 좋다~

 

 

 

6. 집에서 음식물 찌꺼기로 먹여 키우는 지렁이들이 이제 곧 한기를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스티로폼 박스 만으로는 이들의 추위를 막아 줄 수 없다.

지렁이들을 나날이 자라고 있고

상치들은 아직 햇볕을 쪼이며 얼마 남지 않은 가을을 자신들이 배추인양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북풍이 슬슬 몰려 오는 베란다에 나와 있다.

심자고 심은 게 아니었지만 늦게 싹을 틔운 참외는 손톱만한 결실을 맺었다.

큰 화분에 심은 감자는 두뼘은 됨직한 웃자란 싹을 내밀었는데 대견하긴 하지만 역시 안쓰럽다.

가을은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적당치 않은 시기이다.

모두들 결실을 내기에 바쁜 때에 ... ... 나 역시 무언가를 해 보자니 고민에 고민이 깊어간다.

 

시방세계 중생님들아, 제발 아프지 말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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