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논어

논어 술이 24 / 생명이 혁명이다

죄송이 2012. 7. 16. 00:34

 

子 釣而不網 弋不射宿 자 조이불망 익불사숙

 

 

선생님께서는 낚시질은 해도 그물을 치진 않으셨고 주살로 새를 잡더라도 새끼를 품고 있는 것은 잡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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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랑이는 육식을 해야 합니다.

살생이 나쁜 것이기 때문에 호랑이에게 풀만 먹으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은 잡식성입니다.

개인의 요구(need)에 따라 채식만 하는 사람도 있고 육식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간의 식성에 대해 지금까지 대체로 합의되는 수준은 ... 인간으로서 인간 고기는 먹지 말자, 정도입니다.

그 외에는 서로 먹는 것을 두고 비판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으로 인식되는 모양입니다.

 

 

 

 

 

공자고 먹고 살기 위해서 낚시를 하고 새를 쏘았던 시절이 있었나 봅니다.

공자를 지나치게 존숭하는 후대의 학자들은

공자가 제사 지낼 일이 많아서 희생으로 쓰기 위해 살생에 나서야만 했다고 변명하고 있습니다만

누가 들어도 궁색하기 그지없는 말입니다.

우리 그러지 말고, 그냥 공자도 먹고 살기 위해서 단백질이 필요했다고 인정합시다.

공자는 고기를 무척 즐겼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사실이었다면 애써 부정할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다만 공자에게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먹을 만큼만 살생한다 !!!

 

'망 網'은 그물을 던져서 물고기를 잡는 것인데,

대체로 물 전체를 막고 고기를 몰아 걸리게 하는 방식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다 보면, 큰 물고기만 잡히는 것이 아니라 아직 어린 물고기도 같이 잡히게 되고

더 큰 문제는 오늘 필요한 양식은 물고기 세 마리면 되는데 필요 이상으로 열 마리 스무 마리를 잡게 되는 것이죠.

정확히 필요한 것보다 남는 음식은 모두 쓰레기가 됩니다.

내 입안으로 들어와 목구멍을 지나 뱃속에 들어가도 쓰레기이고

채 입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한 채 썩어 버려도 쓰레기가 됩니다.

 

요즘 바다에서 모든 어종을 싹쓸이 하는 어업 방식들은 이런 면에서 큰 문제가 있습니다.

바다의 자원을 약탈적으로 포획해서 재생산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하지 못합니다.

잡는 어업에서 키우는 어업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필요한 만큼만 알맞게 잡는 어업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익'은 화살 끝에 줄을 매달에 잡은 새가 어디에 떨어지든 위치를 쉽게 찾으려고 만든 사냥 도구라고 합니다.

'숙'은 '잠자다'라는 뜻인데, 새는 보통 둥지에서 잠을 잡니다.

둥지를 만들고 거기서 잠을 자는 이유는 둥지에서 알을 낳아 품어 결국 새끼를 기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단순히 '잠자는 새'라는 뜻이 아니라 '알을 품고 있는 새'나 '새끼를 먹이고 있는 새'라는 의미입니다.

 

그럼 내가 사냥하려는 새가 새끼가 딸린 새인지 그렇지 않은 새인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맞습니다. 알 수 없습니다.

들짐승들처럼 새끼 키우는 중엔 젖이 불어 있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그래서 산란기 때는 아예 잡지 않는 것입니다.

으레 대부분의 동물들이 때에 맞추어 알을 품고 새끼를 낳아 기르니

이 때는 아무리 육식이 땡겨도 짐승을 잡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생명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이 없다면 '진보'고 '인권'이고 '평화'고 나발이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열심히 운동했다던 사람들이 결국은 돈 몇 푼에, 한 줌의 권력에

그렇게 쉽사리 팔려 가는 것을 종종 목도합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 그럴 겁니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이 없어서 그럴 겁니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흙을 만져 본 경험이 많은 사람이라면, 소와 닭이라도 키워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쉽게 생명을 배신하는 일들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