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논어

논어 공야장 19 / 이익을 앞세운 우유부단

죄송이 2012. 6. 15. 22:08

 

季文子 三思而後行 子聞之曰 再斯可矣

계문자 삼사이후행 자문지왈 재사가의

 

 

계문자는 항상 세 번 생각한 이후에나 실행하였다고 하는데 선생님께서 그 이야기를 듣고 말씀하시길 두번이면 족할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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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문자는 노나라의 대부로 이름은 행보(行父)입니다.

자신만의 생활 신조였는지, 매사를 적어도 세 번 이상은 고려한 후에나 행동에 옮겼다고 합니다.

꼼꼼히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행동 지침이기는 하지만

세상사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아서 어떤 때는 머리에 떠오르는 즉시 행해야 하는 일도 있는 법입니다.

 

더우기 지금 공자가 계문자를 빗대에 경계시키고자 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어떤 일을 앞두고 이리 저리 자꾸 머리만 굴리고 있는 것은

사적인 이익을 공익에 앞세워 이리 핑계 대고 저리 핑계 대며 실행하지 않으려는 의도 때문입니다.

 

 

 

 

성격이 꼼꼼하고 미리 준비되지 않으면 잘 실행에 옮기기 힘든 성격도 분명 있습니다.

약간 완벽주의 성격에서 유래하는 것인데

평소에 특정 물건은 특정 자리에 정리해 두어야 직성이 풀린다든지

전집류 책들이 1, 2, 3 ... 10 순서대로 정리돼 있어야 보기가 편하다든지

집중력이 좋아 한가지 일에 매달리면 앉은 자리에서 서너 시간은 너끈히 붙잡고 있다든지

가까운 곳에 여행 한번 가려고 해도 삼일 전부터 차표 예매하고 이동 계획 세우고, 또 여행 중에 변수가 생기면 응변을 잘 하지 못해 힘들어 한다든지

깔끔 떠느라고 청소 하는 것 좋아하고 바닥에 보이는 먼지나 머리카락을 끊임없이 닦아 내고 있다든지

결단력이 약해 백화점에서 물건 하나 고르려고 할 때도 두세 시간씩 고민한다든지

아이 유치원 보낼 때도 이 사람 말 들으면 이리로 저 사람 말 들으면 저리로 보낼까 팔랑귀가 된다든지

... ...

이런 성격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계문자의 '삼사'는 사실은 그런 성격 때문에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니 이걸 하는 게 이득이 될지 실이 될지를 끊임없이 저울질하다

중요한 사항을 긴급히 실행해야 할 때는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군자는 평소에 어떤 일이 일어나면 응당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미리 고민하고 결정해 둡니다.

그러한 결의들이 쌓여 있다가 막상 일이 터지면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야말로 몸에 배인 듯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는 것입니다.

지하철에서 성희롱의 순간을 보는 즉시, 이것이 내게 득이 될지 실이 될지 따지지 않고 달려가 상황에 개입합니다.

사람이 불의한 일을 겪고 있는 것을 보게 되면 즉시 달려가 강한 자를 말리고 약한 자를 두둔하게 됩니다.

 

때문에 군자는 '과단 果斷'을 귀하게 여기고 일에 닥쳐서야 많이 생각하는 것(多思)을 그리 높이 숭상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이정희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관악 지역에서 참모진의 부정 선거 의혹으로 결국 후보직을 사퇴한 바 있었습니다.

이정희가 군자다운 행동이 몸에 배어 있었다면 일이 터지는 순간, 상황을 파악하는 순간

바로 사퇴 발표를 했을 것입니다.

 

개인적인 영달과 자신을 지지하는 한 줌 세력의 이익에 끄달렸기 때문에

차일 피일 미루며 결단을 못 내리다가 지극히 정치적인 계산 후에 사퇴라는 결정을 내리는 것을 목도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훌륭한 용단이라고 치켜 세우기도 했지만

그 결정의 과정이 '삼사'의 전형이었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통합 진보당의 모습 또한 어쩌면 이렇게 파국을 맞게 될 것을 이미 예고하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목사 아들 돼지 김용민 씨의 결단 과정도 그랬고

나꼼수 멤버들이 성희롱 논란에 휩싸였을 때도 이리 미적 저리 미적하며 논리의 문제로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며

조금만 더 군자스러운 과단을 내려주길 안타깝게 기대하곤 했었습니다.

 

그들이 항상 군자일 필요는 없지만

한번 두번 군자스러운 행동이 싸여서 대중의 신뢰를 차곡차곡 쌓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사(私)를 버려서 공(公)을 얻는 것이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시간이 지나서 결과론적으로 '공연히' 하는 말이긴 합니다만

결국 김용민은 국회의원이 될 것도 아니었는데 고집을 피우다가 모처럼 좋아졌던 노원구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게 되었고

막강한 다운로드 수를 자랑하던 나꼼수의 인기는 급속히 식어들어 이제 누가 듣는지도 모르게 되었으며

진보를 '통합'했다던 당은 민주주의 질서를 바닥부터 파괴하는 행태를 보여주며 

최초로 여야 합의 하에 국회의원 제명을 논의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묻습니다.

도대체 이들은 평소에 어떤 행동 지침을 마음 속에 새기고 살아왔던 것일까요?

그런 사람들의 말 몇마디에 열광했던 우리들은

또 얼마나 평소에 스스로를 반성하고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