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논어

논어 공야장 7 / 자로에 대해서

죄송이 2012. 6. 8. 01:14

 

子曰 道不行 乘桴浮于海 從我者其由與

자왈 도불행 승부부우해 종아자기유여

子路聞之 喜

자로문지 희

子曰 由也 好勇過我 無所取材

자왈 유야 호용과아 무소취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도가 행해지지 못하니 뗏목에나 의지해 바다나 떠도는 꼴인데 그때도 나를 따를 자는 저 유(자로)뿐일 것이다

자로가 그 말을 듣고 만면에 희색이 가득하자

선생님께서 이어 말씀하시길, 유는 용맹함이 나보다 훨씬 낫지만 잘 다듬어 놓지를 못했으니 안타깝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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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孚 부'는 '껍데기'라는 뜻이 있고, 껍질이 감싸 주고 있어 속은 '든든하다' '미덥다'란 뜻이 있습니다.

껍질과 속은 잘 분리되기 때문에 '들뜨다'는 속성의 여러 한자들이 파생되었습니다.

위 구절에 나오는 나무목 변의 '부'는 원래 서까래란 뜻인데, 그것은 바닥과 천장이 분리돼 있기 때문입니다.

'艀 부'는 '작은 배'라는 뜻인데, 여기서 '부'는 이런 '조각배'나 '얼기설기 만든 뗏목'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도가 잘 실행되고 있었다면 공자가 노나라를 등지고 천하를 주유할 까닭이 없었을 테지만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말하자면, 지금 공자의 신세는 안전성과는 거리가 먼 조각배에 올라 탄 신세이며,

태풍에 집이 무너져 서까래들을 급하게 얽어 만든 뗏목에 겨우 목숨이나 부지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죠.

 

깊은 탄식과 애처로운 한탄이 나올 만도 한데

공자는 이 와중에도 믿음직한 제자 자로에게 농담을 건네고 있습니다.

 

 

 

 

자로는 공자의 제자로, 공자와 자로의 첫 만남은 동화 속에나 나올 만한 그런 코믹물이죠.

게다가 [논어] 곳곳에 나오는 공자와 자로의 문답은 정말 익살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이 둘이 얼마나 끈끈한 스승과 제자 관계였는지는

자로의 마지막 소식을 접한 공자의 오열하는 장면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맙니다.

공자에게 가장 거침없이 쓴소리를 한 사람도 자로였고

공자를 가장 앞장 서서 지킨 사람도 자로였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아닐까 늘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다만 저는 공자같은 스승을 만나지 못했고

그런 이를 만나기 전에 누군가에게 자로처럼 의를 다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한이 있을 뿐이죠.

 

 

 

 

'勇 용'은 '사내다움' '수컷다움' 그 자체입니다.

남성호르몬이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전형적인 특징들을 모아 놓은 것이겠죠.

'호용'은 그런 '사내다움을 숭상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우습게 알고 의리를 소중히 여기는 우락부락한 사람이 한 명 있다고 칩시다.

잘 다듬어 놓으면 포도청장이 되지만 잘 다듬어 놓지 못하면 깡패 두목이 되는 것이고

세상을 등지면 스님이 되지만 세상 속에 남아 있으면 도적이 되는 이치가 있습니다.

 

자로 스스로 그런 원리를 알아서 조금만 더 다듬어 주길

스승인 공자는 희망했던 걸 테죠.

 

 

 

 

 

孟武伯問 子路仁乎 맹무백문 자로인호

子曰 不知也 자왈 부지야

又問 우문

子曰 由也 자왈 유야

千乘之國 可使治其賦也 不知其仁也

천승지국 가사치기부야 부지기인야

 

 

맹부백이 묻기를, 자로는 인합니까

선생님께서 답하시길, 난 잘 모르겠다

 

다음날 다시 같은 질문을 하자

선생님께서 답하시길, 유(자로)는

큰 제후국의 모든 병권을 맡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인한지는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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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賦 부'는 본디 '토지에 매기는 조세'를 이릅니다.

토지의 생산량에 따라 일정 비율을 국가에서 거두어가는 것인데

국가가 하는 일이란 것이 주로 '전쟁'과 '제사'였으므로

'부'에 '戰兵'이란 의미가 추가되게 되었습니다.

 

이 구절 뒤에도 여러 제자들에 대한 같은 질문이 뒤따르는데

앞에 자로에 대한 구절이 하나 나온 마당이니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여기 자로 편에 붙이기로 하겠습니다.

 

 

 

 

진실로 자로의 '호용'은 대단했던 모양입니다.

제자들에 대한 공자의 평가는 무척 날카롭습니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재주가 뛰어나다고 해서

군자의 바탕인 '인'에 도달하기는 진실로 어려웠던 모양입니다.

요즘 말로 '엄친아'들이라면 공자가 바란 그 '인'의 경지에 한발짝 정도 더 다가 서 있는 것일까요?

차도남도 안 되고

간지남도 안 되고

... ...

 

공자가 원한 '인'의 경지는 도대체 어떤 것이었을까요 ?

[논어]를 끝까지 읽어 보면 그림이 그려지지 않을까 확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