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
1.
서울대를 나온 남자가 수트빨을 뽐내며 자신의 사랑을 조금은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해도
한국 사회에서는 용서가 됩니다.
그러나 청춘의 대부분을 아이돌로 성장해,
세상 물정을 잘 모를 것이다란 선입견을 갖게 만드는
스물댓 된 처녀가 사랑 얘기를 하면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지요.
2.
사회적 지탄은 십자 포화 양상을 띄었는데요,
소라넷에서 아이유 합성 사진을 보며 낄낄대던 남성들은 대놓고 로리타를 뺏긴 질투심을 폭발시켰고
여성들은 도리어 봉건적 질서를 내세우며 공적 음반에 왜 사적 사랑 타령을 늘어 놓았느냐고
순수한 줄 알았더니 앙큼한 계집이라고 ... 뭇매를 날렸죠.
3.
다소 치기 어렸지만, 영악한 깜짝쇼처럼
나중엔 박수 받고 끝날 줄로만 알았던 사랑 고백이
더러운 창녀의 고백 쯤으로 변질되기 시작한 기점은
문학을 내세운 출판사의 알 만한 어른들의 냉엄한 심판으로부터였습니다.
이들의 근엄주의는 실로
특전사 용사도 종북 좌파로 몰아버리는 돌팔매 선동주의의 기량에 버금 갑니다.
나는 동녘 출판사가 백산서당과 더불어 과거에 어떤 책들을 냈었는지 잘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4.
이번 일이 그나마 성숙된 결론을 내는 형태로 마무리 되려면,
아이유는 그저 사랑고백이었다고, 설리처럼 맹해 보이긴 싫었다고, 더 늦기 전에 시인해야 할 것이고
출판사에서는 과민반응이었음을 인정하고 한 발 물러나 줘야 할 것 같고
소라넷을 들락거리던 남성들은 궐기대회를 가진 후, 집단적으로 야동을 불태우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들 중 어느 하나도 이루어지기 힘들겁니다.
5.
진보의 끝에는 페미니즘과 생태환경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가장 존경하는 김진숙 지도위원조차도 여성으로서 온전히 운동하지 못했습니다.
건설일용노동조합 사무국장으로 잠깐 일했던 99년 당시에도
어린 남성 사무국장 대신 나이 지긋하신 해고 여성 노조원이 커피 타고 사무실 청소하는 풍경이
현장에선 자연스럽고 낯설지 않은 걸로 통했거든요.
이미 대학가는 포스트모더니즘이 판치다 못해 지리멸렬해 가는 때였는데도 말입니다.
6.
요즘 생각엔, 대부분 다른 이들처럼,
각하가 사회를 후퇴시켰다기 보단
우리 스스로가 아파트에 팔려 각하란 괴물을 탄생시켰지 않나 싶습니다.
제가 자본주의의 속뜻을 이해한 건
맑스 알튀세 김수행 정운영의 책들을 읽고서가 아니라,
철학자 강신주가 청중 앞에서 만원짜리 지폐에 불을 붙여 태운 최근이었으니까요.
7.
이래저래
젊은 대한민국 청춘들의
사랑도 낭만도 꿈도 빼앗어 버린 것만 같아
미안한 마음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