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추억
감독은 세 편의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었다.
그 첫번째가, '트루맛 쇼'였고
그 두번째가 바로 이 'MB의 추억'이다.
감독은 두 영화를 통해 '이미지를 소비하는 대중'들에 관한 관통하는 어떤 주제를 엮어 보려고 한 것 같다.
좌파 이론의 이런 저런 발전과 퇴행이라는 배회의 과정 속에 잠깐 나타났던
시뮬라시옹 이론에 기반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따라서 그 이름에 걸맞게 그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
대한민국의 다수 국민들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경제 실정을 책임지우며 민주당 후보를 박살내고 MB를 대통령으로 뽑았고
이번 대선에서는 마찬가지로 총체적 실정을 책임지우며
다시 새로운 누군가를 대통령으로 뽑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국정원도 미국도 아니다.
정확히 대한민국 국민들이 대한민국의 주인이며
그들은 투표를 통해 주인 행세를 톡톡히 해 오고 있다.
오늘날처럼 개명한 사회에서
아직도 미국의 간섭이나 정보 독재 따위를 이야기하며 음모이론으로 썰을 풀려는 자가 있다면
원시인 취급 혹은 정신 병자 취급을 받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정확히 대한민국 국민들이다.
평론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한민국의 썩은 정치가 국민을 우롱했다고 말하곤 했지만
슬프게도 정치라는 계약 현장에서는,
실소유자로부터 주인의 권리를 양도받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사기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법칙이 엄존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사기꾼의 행태를 아무리 비난한다고 하더라도
사기를 당한 당사자 스스로가 '주의의 의무'를 소홀히 한 죄를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가에게서 이미지만을 읽기 좋아하는 대한민국 주권자들은
시장통을 돌며 끊임없이 쳐 먹어 대는 후보자들을 지극히 사랑한다.
먹성 하나는 끝내주게 좋았던 MB는 한 릇 두 그릇 ...
오뎅, 풀빵, 떡볶이 ... 가릴 것 없이 닥치는 대로 먹어 대었고
연설 와중에 시민이 내민 요구르트도 반 병 밖에 마시지 못했던 정동영은 압도적인 표차로 떨어지고 말았다.
만약 이번 대선에서 박근혜가 떨어진다면
그것은 ... 박근혜의 입이 짧은 탓이 가장 큰 원인으로 밝혀질 것이다.
영화는 짧지만 확실한 증거 자료를 제시하며
이 '쳐묵 능력과 당선 확률의 상관 관계'이론을 명확히 입증해 내는 데 성공한다.
또, 영화는 반값등록금 투쟁 현장을 찾은 늦깍이 대학생 김제동의 지지발언을 내세워
그가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정리한다.
' 원하는 바가 있다면 투표장으로 가라.
투표율을 높일수록 정치인들이 표를 구걸하러 달려올 것이다 '
그리고 끔찍하게도,
히틀러의 정치 선전 부장이었던 괴벨스의 말을 빌려,
유권자의 책임을 재삼 강조한다.
" 우리가 강제한 게 아니야. 그들이 우리에게 위임했지. 그리고 그들은 지금 그 대가를 치르는 거야 "
영화의 앞과 뒤 ... 수미쌍관법을 이용해 강조한다.
김대중이 대통령에 당선되던 선거에서 나는 군대에서 부재자 투표를 했었고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던 선거에서 나는 오랜 고심끝에 투표장까지 찾아 가서 사표를 만들고 왔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당선되던 선거에서 나는 투표장에 아예 가지 않았다.
이렇게만 본다면 나의 투표 관심도와 정치 의식은 점차 하향화하는 것처럼 보인다.
세월이 흐르고 나이를 더 먹어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나, 투표를 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
맹목적으로 비판하는 분위기에 대해 나는 우려한다.
정치의식을 줄자로 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것 같아서이다.
정치를 밝고 가볍고 즐거운 것으로 이해해 가는 시류에 대해서는 더없이 만족스럽다.
무겁고 서럽고 비장한, 정치에 대한 낡은 감정들은 더이상 사라졌으면 좋겠다.
투표장에 가는 일이 사실 그렇게 대단히 힘들거나 수고스러운 일은 아니다.
정치의식의 높낮이를 반영하는 행위는 더더욱 아니다.
투표장을 찾는 행위는 엄밀히 말하면 그렇게 가벼운 투표 용지의 딱 그 무게만큼만 정치에 참여하는 행위이다.
그런 무게감으로 대한민국의 정치를 논하려는 태도가 도리어 우려스럽다.
5 년 내내 대통령이 무슨 일을 하는지 관심도 없다가 단 하루만 대통령을 뽑는 투표를 하고
4 년 내내 국회에서 어떤 법들이 개악되는지 관심도 없다가 단 하루만 국회의원을 뽑는 투표를 하면서 말이다.
정치의 본질은 여의도나 청와대, 혹은 가끔씩만 찾아오는 동네마다 깔리는 투표소에 있는 것이 아닌데도
사람들은 티비와 라디오를 통해서만 사고하고
그 사고를 즉자적으로 이미지화시킨 투표를 통해 자렁스럽게 '정치의 완성'을 노린다.
어이없다 ... ...
어떠한 혁명도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진 않는다.
어떠한 계급도 그런 식으로 다른 계급을 이길 수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웃었다.
이화여대에 있는, 삼성이 자본을 대서 만든 건물 속에 갖춰진 영화관에서
빈 자리가 여기저기 보이는 채로
몇 안 되는 관객들과 스스럼없이 웃으며 유쾌하게 영화를 보았다.
사람들은 시간의 마디를 느끼면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한 마디 두 마디 .. 매번 마디를 잘 지으려면
그 줄기를 길게 뽑아내기 위해 얼마나 오늘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야 하는지 잊곤 한다.
하루하루 승리의 일상을 만들어 가지 못하는 주권자들은
투표장을 해방의 공간으로 인식하며 즐거이 권리를 행사한다.
마치 좁은 케이지 속에서 기록 경신을 위해 매일 달려나가는 닭이
스스로를 갈매기 조나단이라고 한껏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것처럼 ... ...
스스로가 계급적 각성을 통해 정치 세력화되지 못한다면
결국 투표는 일회적이고 그래서 무의미한 단순재생산에 불과하게 된다.
모든 가치는 인간의 노동으로부터만 창출되고
모든 정치 행위는 인간의 각성을 통해서만 창발된다.
당신의 대출금과 텅빈 예금 잔고
내 가족 중에서 돈벌이가 가능한 사람들 중 이미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비정규직이 느끼는 설움
내일을 장담할 수 없어 매일 4~50 명씩 자살해야 하는 당신들의 주변인들
하루하루 더 사는 게 비루하고 지옥인 노년, 희망없는 미래,
그래서 오늘도 불안에 떨며 그것이 명백한 사기임과 동시에 강탈임을 알면서도 울며 겨자먹기로 들어야 하는 각종 보험들을 바라보는 나 ...
이 모든 것들을 계급 이론을 배제하고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에게 이 온 우주를 주고 싶다.
저녁에 퇴근한 아내가 김밥을 만들어 주어서 정말 달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