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논어

논어 술이 25 / 알고서도 잘못을 저지르는 것은 가서 빌 곳도 없다

죄송이 2012. 7. 24. 18:18

 

 

子曰 蓋有不知而作之者 我無是也

자왈 개유부지이작지자 아무시야

多聞擇其善者而從之 多見而識之 知之次也

다문택기선자이종지 다견이지지 지지차야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마도 잘 모르면서 말 하고 글 쓰는 이들도 있는가 보더라, 나는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많이 듣고 아름다운 것을 가려 좇았고 널리 듣고 (아름다운 것들만) 기억했으니 알고서 짓는 것 다음은 되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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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에게 있어서 앎과 행동은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나쁜 행동을 하는 것은 그가 좋은 앎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결론에 자연스럽게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사람이 선하게 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우는 것을 강조할 수밖에 없습니다.

 

앎(知)은 곧 행동(作)으로 이어지는데

우리가 누군가의 행동을 보고 입을 쯧쯧 차게 되거나,

안타까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 '부지이작'의 상황입니다.

 

나의 행동이 자연스럽게 항상 올바름에 도달해 있지 못한 상태라면

나는 많이 보고 넓게 들으며 아름답고 착한 것을 따라 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행동으로는 좇고 (從) 머리로는 기억(識)해야 합니다.

'식 識'은 '안다'는 의미일 때는 '식'으로 읽고 '기억하다, 기록하다'의 의미일 때는 '지'라고 읽습니다.

책을 다 쓰고 나면 누가 쓴 것인지를 밝히며 '아무개 지'라고 쓰면서 이 글자를 씁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동시에 일치되면 더없이 좋은 것이긴 합니다만

배워가는 우리들이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경지를 바랄 수는 없겠지요.

 

그래서 몰라서 올바른 일을 하지 못하는 '부지 不知'의 단계에서

열심히 배우고 익히는 '종지 從識'의 단계를 거치고 나면

이제 지행이 일치하는 진실한 '지 知'의 단계에 이르게 되겠지요.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모르기 때문에 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변명의 여지라도 있겠습니다만,

알고서도 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무엇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을 겁니다.

 

현재 차기 대통령 후보 0 순위를 달리고 있는 박근혜가

5.16 쿠데타를 두고 '어쩔수 없는 선택'이라고 했다는데

이런 건 모르고서 씨부리는 말일까요,

알고서도 씨부리는 말일까요 ... ...

 

변명의 여지라도 있는 것일까요

결코 용서가 안 되는 것일까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