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논어

논어 옹야 25 / 일상의 비판

죄송이 2012. 6. 24. 23:45

 

子曰 君子 博學於文 約之以禮 亦可以不畔矣夫

자왈 군자 박학어문 약지이례 역가이불반의부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옛것을 널리 배우되 상식에 맞추어 요약할 수 있다면 또한 경계 하나를 뛰어 넘을 수 있을 것이다

 

 

......................................................

 

 

 

군자도 사람인지라

동생이 마약을 한다는데,

친구가 이상한 사이비 종교나 다단계에 빠졌다는데,

지인이 어울리지 말아야 할 인간들과 어울리며 도박으로 돈을 탕진한다는데

그를 어찌 구할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방법을 찾아 내기 위해서 군자는 많은 것들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에만 천착해서 똑똑한 멍충이가 되기 보다는 인간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고 돌아가는지 해박한 견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 해박함은 내가 필요할 때 언제든지 꺼내 쓸 수 있을 만큼 요약되고 정리된 것이어야 합니다.

요약이 되지 않고 방만한 지식 창고 상태로만 남아 있으면 결코 실행할 수는 없으니까요.

 

일례를 들어 봅니다.

사형 제도에 대한 찬반 여론이 모두 각각 적절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평소에 깊이 고민해 두지 않으면

우리는 오원춘 사건을 바라보면서 아주 쉽게 '사형시켜버려~'라고 말하다가도

억울한 죽음을 눈앞에 겪으며 '제발 사형만은~'이라는 상반된 태도를 취하고 말게 될 겁니다.

 

우리가 자주 실수하는 이유는

평소에 아무런 고민 없이 살다가

그나마 피상적인 지식으로 뭉친 즉자적인 판단으로 하루하루를 겨우 연명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반'이라고 하는 것은

논과 논, 밭고랑 사이들을 흐르는 좁은 도랑을 말하는데

이것들은 논의 경계를 지어 주는 역할도 합니다.

 

주희는 '반'을 '어기다'의 뜻으로 풀어서 '불반'을 '도에서 어긋나지 않을 것이다'로 풀고 있지만

저는 그냥 경계의 의미를 가져다 쓰고 싶습니다.

 

잘 보면, 말 만들고 논쟁하기 좋아하는 성격 때문이 아니라

누구나가 옳다고 말하는 사안에 대해서도 가끔씩 한둘은 나서서

'그렇게만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닌 것 같으니, 이 사안에서는 이런 부분도 고려해 봅시다'라고

일깨워 주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그냥 귀찮은 소수 의견일 뿐이야'라고 쉽게 묻어 버리지만

나중에라도 '아~ 이런 일을 겪고 보니 그때 그 사람의 외침이 맞았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있지요.

 

논 물속에 사는 미꾸라지로 남지 않고

큰 강으로 나가 헤엄치는 대어로 살고자 한다면

항상 넓게 배우는 자세에 더해서

일상의 상식 속에서도 끊임없이 문제점들을 되짚어보는 비판 정신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