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옹야 1 / 내용과 형식의 끊임없는 긴장 ... 표면적 간소함의 함정
子曰 雍也 可使南面 자왈 옹야 가사남면
仲弓問子桑伯子 子曰 可也 簡 중궁문자상백자 자왈 가야 간
仲弓曰 居敬而行簡以臨其民 不亦可乎 중궁왈 거경이행간이림기민 불역가호
居簡而行簡 無乃大簡乎 거간이행간 무내태간호
子曰 雍之言 然 자왈 옹지언 연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옹은 정사를 맡길 만 하구나
하루는 중궁이 자상백자란 사람에 대해 물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괜찮은 사람이다, 간략함이 좋았다.
중궁이 말하길 '경'에 근거하면서 간략함으로 백성을 대한다면 그것이 더 낫지 않습니까
간략함에만 근거해서 간략하게만 행한다면 지나치게 간략했다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선생님께서 옹의 말이 과연 맞다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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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면 南面'은 '얼굴을 남쪽으로 하고 앉는다'라는 뜻인데, 주로 '임금이 정치를 하기 위해 북쪽에 앉아 만조 백관을 바라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흔히 도시들은 큰 강을 끼고 건설되는데, 강의 북쪽을 '양 陽'이라 부르고 남쪽을 '음 陰'이라 부릅니다.
그래서 '한수 漢水' - 한강 북쪽에 건설된 조선의 수도를 '한양 漢陽'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한양의 북쪽은 삼각산을 비롯한 여러 산들이 병풍처럼 안온하게 도시를 지켜주고 있으니
임금은 이 병풍을 배경 삼아 북쪽에 자리잡고 앉아 남쪽에 늘어선 신하와 백성들을 다스리게 됩니다.
이것이 '남면'의 의미이고 때문에 '남면'은 곧 '임금의 정치'를 의미하게 되었습니다.
공자가 제자인 중궁 옹에게 '남면할 만 하다'라고 평가한 것은
옹의 인품이 정치를 잘 해서 백성들의 살림살이를 나아지게 할 수 있을 만한 그릇이 됨을 칭찬했다는 의미입니다.
'자상백자'라는 인물은
莊周(장자)가 쓴 글에서 '자상호 子桑戶'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는
호인(胡寅)의 말을 인용한 주희의 주석이 보입니다.
'簡 간'은 대나무나 나무의 가지와 껍질을 쳐 내고 일정하게 잘라 쪼개 만든 나무판입니다.
대나무로 만들면 '죽간'이라 하고 일반 나무로 만들면 '목간'이라 합니다.
종이나 비단이 글을 쓰는 도구로 주요하게 활용되기 전까지 죽목간은 일반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죽간들을 끈으로 엮어서 두루마리처럼 만들 것을 한 '권 卷'이라고 합니다.
혀를 동그랗게 말아 내는 발음을 '권설음 捲舌音'이라고 하듯이
'간 簡'이 모여서 '권 卷'을 이루고 '권 卷'이 모여서 '책 冊'을 이룹니다.
따라서 '간'이란 '작은 기초 단위'라는 뜻도 있고 '간략하다' '단순하다'라는 의미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기 위해 나무를 다듬어 내는 과정, 즉 번거롭고 필요없는 것들을 쳐내는 과정이 없으면 일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남의 말을 들으면 요지와 잘 살려낼 줄 알아야 하고
내 말을 들려줄 때는 길고 장황하게 쓰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는 것이 좋은 기술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간'입니다.
옹은 앞에서도 나왔지만 언변이 없어서 주위 사람들이 질책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 http://blog.daum.net/cjsanswlfl/7231904 )
이런 것으로 봤을 때 옹은 언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말을 무척 아꼈던 모양입니다.
그러한 '간'한 자세를 두고 선생님께서는 옹이야말로 정치를 잘 할 것 같다고 칭찬해 줍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서 옹이는 벙어리 말문 터진 듯 줄줄줄 자신의 소신을 밝혀 냅니다.
그러한 간략함이 실용적이고 효율적이어서 좋기는 하지만
그 간략함의 근저에는 항상 상대에 대한 그리고 모든 사물에 대한 '경'이 필요하지 싶어요.
'경'이란 '진실됨'이며 '공손함'이며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며
'호랑이가 쥐 한마리를 잡을 때도 모든 집중을 끌어 올리는 자세'와 같은 것이지요.
쉽게 쉽게 일을 처리하는 듯 해도 그 이면에는 굉장한 정성과 두루 마음씀이 함께 하지 않는다면
'간략함'은 간략함에서만 끝나고 말 것이라는 옹이의 부연 설명에
공자는 '네 말이 과연 옳다'고 마저 칭찬해 주게 됩니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옳은 말이긴 한데
상호 예의를 지킬 때 그 모습은 더욱 높은 창조성과 효율성을 달성할 수 있지만
서로 막나가자는 분위기로 변질되면 그 조직의 앞날은 장담하기 힘들어집니다.
절차와 예의는 번거롭긴 하지만 조직을 유지해주는 틀이자 최소한의 형식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군대처럼 아무런 이유없이 상명하복만을 강조하는 조직은
창의성과 효율성이 제로에 가깝게 떨어질 것입니다.
때문에 병사간의 어느 정도의 형평성 제고라든지 관계의 개선이 시급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병이 부사관이나 장교들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간'함이 좋지만 '태간'으로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죠.
회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가 친구처럼 편하고 자유스러운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각자의 역할이 분명해서 결정의 권한이나 업무의 충실함과 같은 기본적인 '선'들은 반드시 지켜져야 합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쨌든 학생은 '배우는 자'이고 선생은 '가르치는 자'입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들이 가르치는 자를 가르치려 해서는 절대 안 될 일입니다.
누군가가 나를 대함에 겉으로는 편한 척, 친한 척 하지만
속으로는 나를 존중해주는 마음이 없다면 그런 사람과는 오래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거꾸로 나를 대함에 겉으로는 좀 차가와 보이고, 지적질이 심하다 싶더라도
내게 꼭 필요한 것들을 지적하거나 정당한 비판을 해 왔다면
그것은 그의 속마음에 나에 대한 지지와 존중이 가득 차 있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벗하지 않으면 도대체 나는 누구와 벗하려 하는 것이겠습니까 ?!
평소에 말재주 없기로 소문 난 옹이가 말문이 모처럼 터졌길래 제 글도 주저리 주저리 길어지고 말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좀더 간소해지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