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공야장 12 / 선생님의 말씀은 졸라 어려운 것도 있더라
子貢曰 夫子之文章 可得而聞也
자공왈 부자지문장 가득이문야
夫子之言性與天道 不可得而聞也
부자지언성여천도 불가득이문야
자공이 말하길, 선생님의 대부분의 말씀들은 들어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이 성과 천도에 대해 말씀하실 때는 들어도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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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에 대해서
" 자공이 말하길, 부자의 문장은 자주 들어볼 수 있었으나 성과 천도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 "는 해석이 주를 이룹니다.
'문장'이라는 것은 '스승의 덕이 겉으로 드러나시는 모습이나 말씀 등등의 모든 것들'이라고 해석하고
'성'이라는 것은 '사람이 하늘로부터 받은 자연적인 이치'이며
'천도'라는 것은 '천리자연의 본체로서 하늘과 사람을 동일하게 만드는 이치'라고 합니다.
[중용]에 나오는 이런 개념어들에 대한 짧지만 인상 깊은 서술들을
후대의 성리학자들은 불교와 도교로부터 발달된 체계를 끌어와 새로운 해석들로 창발시킴으로써
신유학의 시대를 열게 됩니다.
따라서 이 구절에 대한 이러한 해석을 이해하시려면 [중용]에 대한 학습을 하지 않으면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구절이 그런 얘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자공은 매우 솔직하게 공자님의 말씀에 대해 자신의 이해 정도를 고백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대체로 제자들을 가르치실 때 모두가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각자의 공부 단계에 맞추어 맞춤식 빨간펜 선생님들처럼 지도해 주셨죠.
철학적 수준이 되는 안회와는 매우 높은 고담을 주고 받았을 겁니다.
용맹한 자로와는 능청과 비유를 섞어 때로는 달래며 때로는 얼르며 그렇게 가르쳤을 겁니다.
자공은 위와 아래를 보면서 자신이 알아 들어 먹을 수 있는 것과 종내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에 대해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신에 대한 각인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과 안회의 수준을 묻는 선생님의 질문에도
안회는 문일지십이고 자신은 문일지이라고 솔직히 대답할 수 있었을 겁니다.
[논어]의 편집에는 주로 유자와 증자 그리고 자공의 제자들이 참여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런 의견을 피력하는 학자들은 바로 이런 부분의 윤색에서 착안했을 것이라 짐작해 봅니다.
이 구절이 없어지지 않고 꿋꿋이 살아남았던 이유를 두 가지 측면에서 모두 살필 수 있습니다.
하나는 이 구절이 자공의 문인들에 의해 남겨졌다면
자신들의 선생님이 '성'과 '천도'에 대해 이해하시기 힘들었단 것을 인정하긴 힘들었기 때문에
글자의 순서를 몇 자 바꾸어 다른 내용이 담길 수 있도록 윤색했을 수 있습니다.
혹은 증자나 유자 쪽, 혹은 그 외의 문인들이 자공의 한계를 드러내기 위해서
이 구절을 강력히 살려 두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저는 이 구절의 본래 모습은 이렇지 않았을까 상상해 봅니다. ^^
子貢曰
夫子之文章 聞而可得也
夫子之言性與天道 聞而不可得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