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논어

논어 공야장 11 / 내가 좋다고 남에게 강요하지 말며

죄송이 2012. 6. 11. 00:17

 

子貢曰 我不欲人之加諸我也 吾亦欲無加諸人

자공왈 아불욕인지가저아야 오역욕무가저인

子曰 賜也 非爾所及也

자왈 사야 비이소급야

 

 

자공이 말했다. 우리들은 모두 다른 사람이 나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저 역시 다른 사람에게 나를 강요하고 싶지 않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사야 네가 아직 도달한 바는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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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처한 상황마다에서 가장 적절하게 요구되는 행위에 대해 결정하지 못해 

우리는 늘 혼란스러워하고 옥신각신하게 됩니다.

일반적인 상식에 대해 규정하기 위해 법이나 규칙을 제정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적용될 때는 늘 '時中 시중', 시의적절함과 온당함을 찾아가지 못해 판정에 불복하는 상황이 벌어지게 되곤 하죠.

 

둘이서 사는 사회에서는 이런 판정의 기준은 매우 간단합니다.

즉 갑이 사물을 공평하게 배분한 뒤 을에게 먼저 선택할 권리를 준다면 둘 사이에는 아무 불평이 없게 됩니다.

그러나 셋이 사는 사회에서는 누가 나누고 누가 선택할 것인지가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만 명이 사는 사회에서는 이 복잡함과 혼란은 만 배로 늘어나게 됩니다.

 

 

 

 

교육에 관해 이야기해 봅시다.

교육의 삼 주체 중 하나인 학생들에 대한 존중과 가르침에 대한 책임 사이에는 적절한 균형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우리의 교실은 현재 일상적인 붕괴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학생들만의 문제도 아니고 교사들만의 문제도 아니며 밖에 서서 교육 문제에 무관심한 시민들의 문제도 아닙니다.

누구 한 당사자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거꾸로 말하면 우리 모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기에게 좋은 것은 남에게도 좋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내가 한식을 좋아하면 다른 사람들도 양식은 느끼해서 먹기 싫어한다고 생각하죠.

사회 생활을 조금만 해 보면, 음식이나 기호에 있어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단순한 '편리함'의 문제가 아니라 '필연적 요구'의 문제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그러나 정치나 경제, 사회 복지나 교육의 문제와 같은 지점들에서는 사람들이 다소 날카로워집니다.

북한에 대한 태도나 통일 문제, 종교와 관련된 신념에 있어서 사람들은 흔히 쉽게 대립하고

때문에 피로감만 잔뜩 쌓인 채 대화를 거부하기 일쑤입니다.

 

민주 사회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사상의 자유가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하고

그러자면 국가보안법을 철폐해야 하는데

이 문제를 논의하는 데만도

'좌파 빨갱이'나 '꼴보수 또라이'를 언급하지 않으면 대화가 종결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극심한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언젠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해야 할 때를 맞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넘어야 할 산들은 아직도 무지무지 중첩해서 늘어져 있습니다.

 

자공은 아직 내가 좋아하는 얘기라고 남에게 강요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수준이지만

공자는 거기에서 그치지 말고

옳은 일을 찾아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라고 조금 더 추스려 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