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고백'에 대한 답글
지나칠까 말까 많이 망설였습니다만 ...
아니 읽어볼 수가 없는 내용이어서 이렇게 몇자만 적습니다.
제가 처음 거리 집회에 나갔을 때는 정말 별로 안 무서웠습니다.
앞에는 믿을 만한 선배들이 잔뜩 있어서 그랬던 것 같아요.
근데 제가 책임져야 할 짬밥이 되어 처음으로 철거촌 사수 투쟁을 나가는 날 ... 그렇게 무섭고 떨릴 수가 없더군요.
물론 철거촌 용역들, 말이 용역이지 식칼에 야구방망이 들고 설치는 깡패들 진짜 무서웠죠.
그런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진짜 나를 그토록 공포스럽게 만들었던 원인은
'이 싸움은 무조건 지는 싸움이다' ... 라는 패배감과
'우리가 여기서 배창시 터져 죽어도 세상은 눈도 꿈쩍 안 할꺼다' ... 라는 고독감이었던 것 같아요.
아무리 정의로운 일이라 하더라도
홀로 싸우기는 정말로 힘들고 지치는 일이죠.
홀로 싸울 때는 누군가 곁에 더도 말고 '딱 한명만' 더 있어도 좋겠다고 정말로 간절히 생각하죠.
그런 거 보면, 저 시려운 크레인 위에 307일을 혼자 농성한 한진중공업 김진숙 지도위원은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세상을 사는 모든 사람들은 그야말로 그 하나하나가 '소수자'라고 생각해요.
이 사회가 바라는 정상적인 사람, 혹은 평균적인 사람의 이미지란 게 있지만
그 정도의 연봉과 그 정도의 가정 환경과 그 정도의 가족 관계
혹은 그 정도의 기호와 취미 생활, 그 정도의 학벌을 모두 갖추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나요?
삼성 반도체에 다니는 직원이 산업 재해로 죽게 될지 누가 알았겠어요?
20년 전만 해도 신망이 높던 교사란 직업이 지금은 이렇게 괴롭고 힘든 일이 될지 누가 알았겠어요?
잘 나가는 대기업의 직원이라도
떵떵거리는 신문사의 글빨 좋은 기자라도
어느 한 순간에 사회적 약자의 나락으로 충분히 떨어질 수 있죠.
그런 면에서 영원한 부와 권력을 대대로 세습할 수 있는 사람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무언가 결여돼 있고, 그것을 상처로 안고 살아가는
그래서 서로 연대해야만 하는 소수자가 아닐 수 없죠.
내가 강정마을 사람이 아니더라도
내가 미군기지 옆에 사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내가 동성애라는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내가 여성이 아니더라도
내가 농민이나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내가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내가 비정규직이 아니더라도
내가 이주 노동자가 아니더라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소수자의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을 되뇌이면서
내가 그들을 대신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와 같이 싸워주는 것이란 생각을 하고 나서야
저는 패배감과 고독감이 가져다 주는 공포심을 조금, 아주 조금 떨쳐 버릴 수 있었습니다.
집회에 갈 때마다 전경들의 화이바나 방패가 따뜻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과거에 쇠파이프를 들었던 손이 한번도 자랑스럽다거나 기뻤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래도 집회는 두 명 이상이 모여서 하는 거잖아요^^
내 곁에 있는 사람은 나보다 더 공포에 떨고 있는지도 모르죠.
그렇다면, 만약 그렇다면 내가 그에게 좀더 허세를 떨어서라도 힘을 불어넣어 주면 좋은 거 아닐까요? ^^
김진숙 지도위원이 삼백일곱날을 매달려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그 아래서 그를 걱정스럽게 올려다보고 있었던 수많은 시민들,
그리고 한시도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던 노조 동지들의 연대 덕분이었겠죠.
전설로 얘기되는 80년대에도 사실은 모든 대학생이 길거리로 달려나와 운동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위 현장에는 오히려 소수의 사람들만이 함께 했습니다.
다수는 도서관에서 죽도록 공부만 하는 사람들이었어요.
다만 그 당시에 길거리에 섰던 사람들은 배추 장수를 하고 있고
도서관에 있던 사람들은 검사나 변호사가 될 수 있었던 반면에,
현재는 그 사람이 길거리에 서건 도서관에 앉아서 대학 5년을 보내건
모두들 빈민의 나락으로 떨어져야 한다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요 ...
뭐 어때요 .... .... 배추 장수로서의 삶이 더 행복한 것 같은데 ~ ^^
배추 장수로서의 삶 자체는 퍽퍽한 것이지만
연대의 감수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 그 삶은 보다 아름답다고 할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