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비극의시대

[스크랩] ㄴ 풍경소리님께 ... ...

죄송이 2011. 11. 27. 12:47

 

1. 원래 글 제목에 누군가의 아이디를 콕 찝어 지목하면 대단히 실례인 줄 알지만 제목을 이리 적은 점 양해바랍니다.

 

 

2. 차한잔마시며님(역시 닉을 거론하게 되어 죄송ㅠ.ㅠ)의 해석과 풍경소리님의 재설명에도 불구하고

저로서는 무엇을 궁금해하시는 건지 정확히 이해하기가 어렵네요.

어떻게 읽으면 무언가를 묻고 계신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읽으면 또 그냥 본인의 소감을 적으신 것 같아서 제가 대답해야 하는 건가 ...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만,

어쨌든 제 생각으로 미루어 몇 자 적겠습니다.

불쾌함 없으시길 미리 당부드립니다.

 

 

3. 흠흠 ~ 국사책을 펴면 ....

정치 사회사(전쟁, 왕위계승, 균역법 같은 세제나 제승방략제같은 군 시스템까지 주로 이런 얘기들)가 먼저 나오고

생활 문화사(연등회 팔관회, 훈민정음 창제, 세종 당시의 수세 규모, 조선 후기 자영농의 등장 같은 ... )가 이어서 따라 나오죠.
이 내용들을 엮어서 강의해 주는 선생님이 학교마다 없었다는 게

우리 국사 교육이 요 모양 요 꼬라지인 한 원인이겠죠.


모든 정치 체계들은 그 사회의 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받침을 근거로 이루어집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요즘 드라마에도 나오지만, 조선 세종은 훈민정음을 창제해서 반포하고자 집현전 학자들을 사전에 모아 일을 비밀리에 꾸립니다.

이들이 왜 CIA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비밀리'에 일을 진행해야 했으며,

이들은 '왜' 굳이 훈민정음을 반포하려고 했을까요?!

 

당시 세계의 중심은 중국이었습니다.

중원의 중심은 한족 정권인 명나라였고 한자 체계와 유교 질서를 근간으로 하는 전세계적 시스템이었죠.

중국은 주변국들을 정치적으로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복속시켰는데 그런 또하나의 근간이 '조공 무역'이었습니다.

조선은 당시 건국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도 내부에 고려의 잔존 세력들이 남아 국가 기틀이 약한 상태였죠.

이런 시기에 대명과의 확고한 외교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사안이었는데

한글 창제는 중국의 한자 중심 시스템에 위배되는 '독자 행동'으로 오해받을 수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그것은 비단 중국의 외교 보복 문제 뿐 아니라, 도리어 국내 유학자들의 극심한 역공을 놓일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더 위험한 정책이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종을 비롯한 당시 친위정권 세력들은,

훈민정음 반포를 통해

1) 조선이 문화 정치적으로 기반이 탄탄한 나라임을 대외에 알려 대중국 외교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확보해야 했고

2) 대내적으로 한자를 모르는 평민 계층들에 대한 정권의 시혜를 알림으로써 요샛말로 친서민정책을 써야 했으며

3) 마지막으로 훈민정음으로 된 용비어천가 등을 퍼뜨림으로써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대중들에게 확인시켜야 했습니다.

 

 

 

4. 여기서 지적해야 할 것은 이런 정책들을 태종은 멍청해서 못 했고 세종은 똑똑해서 했느냐 하는 것이죠.

태종 당시만 해도 조선이 선지 60년이 채 안 되었습니다.

부지런히 불온한 세력들을 숙청하고

친정부 세력을 키워야 했으며

자주 국방을 실현하고

토지를 경작해 조세를 높여야 했습니다.

이 모든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 기틀이 갖추어진 다음에야 세종의 훈민정음 반포가 가능했던 겁니다.

 

마찬가지로 정조의 르네상스 역시 영조의 피흘리는 기반 닦기 과정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습니다.

영국 헨리 8세의 방탕에는 헨리 5세의 피흘리는 정책이 밑바탕이 되었던 거지요.

중국 청나라 건륭제의 화려함은 그 선대 강희제와 옹정제의 밑밥 투자가 없이는 불가능했던 겁니다.

 

 

 

5. 역사는 늘 이런 식입니다.

 

고대 사회 역시 다르지 않습니다.

그 경제적 시스템이 노예제냐 봉건제냐 혹은 중국 왕조식 독특한 방식이냐 차이는 있겠지만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광개토대왕이 정예군 1만을 이끌고 정벌을 나가는데

그들의 갑옷과 병장기이며 먹을 군량이며 이동수단 등은
당시 고구려 사회가 뒷받침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이루어졌겠죠.

지도를 펴 놓고 만주(현재의 중국 동북 3성) 지역을 살펴 보세요.

농토라고 경작할 만한 평지가 거의 없어요.

요하 이동의 지역은 맨 산이고 밀림입니다.

 

후금을 세운 여진족 추장 누루하치는 

당시 조선이나 명 사신의 보고에 따르면 아주 곤궁한 오두막에서 가족 몇을 건사하는

정말 동네 추장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차차 부족을 규합하고 힘을 키워 요동 반도를 얻고 나서야 조선에서 소를 수입해다 경제적 토대를 만들어 냈습니다.   

 

몽골의 대추장들 ... 칭기즈칸이나 타타르의 알탄칸, 혹은 티무르 역시

유목민족들 특유의 구름같이 모이는 세력 규합 방식을 이용해 한 세기를 지배하긴 했지만

이들이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지배하러 나갈 전사들에게 

밥과 돈을 쥐어줄 수 있을 때에만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근거지를 두지 않고 극단적인 약탈 활동을 벌였던 것입니다.  

 

 

 

6. 전쟁을 할 때는 항상 무지막지한 병참선이 필요합니다.

실제 전사 집단이 1만 남짓이라면 이들이 먹을 것과 입을 것 싸울 것을 나르고 공급하느라

그 전투 병력의 몇 배나 되는 예비 병력이 필요하며

이를 경제적으로 뒷받침할 막대한 민(民)이 필요합니다.

 

[한단고기]를 추종하는 사람들과 소위 '대륙역사설'을 좋아라 하는 이들에게 저는 계속 물어 왔어요.

 

대륙에 있었다던 고구려 신라 백제는 인구가 얼마였냐?

토지 제도는 어떤 방식이었고

조세 제도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었냐

관등은 어떻게 나뉘었고 복식은 제정했었냐

그 광대한 영토와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을 다스리기 위해 지방 장관과 향리 들은 어떤 시스템으로 조직되었냐

농사는 지어 먹었냐 아님 나무 베고 사냥만 해서 먹었냐

집은 어떻게 짓고 살았냐

금관은 썼냐, 곤룡포는 입었냐

무덤은 어떻게 쑤었냐

사람이 죽으면 며칠을 곡을 했냐

장신구는 뭐였냐

대륙의 여러 곳에서 고분이나 벽화 갑옷 같은 고고학적 증거들은 출토돼 나오냐 ....

 

..... .....

 

 

 

7. 저는 민족주의 자체를 용인할 수는 있지만

그 민족주의가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우경 보수화에 보탬이 된다거나 

섞이지 않는 계급을 하나의 민족으로 호도해 상업자본주의에 이용한다거나

현재를 개혁하지 않은 채 골방에 틀어박혀 패배주의와 결합돼 과거의 영광에만 집착하는 폐인 수준으로 변질된다면,

그리고 무엇보다 군국주의나 파시즘과 연결될 기미가 보인다면

단호히 민족주의를 배격하려고 합니다.

 

식민 시절에 민족주의는 독립 투쟁의 한 모티브였으며

주변국의 역사 속에서도 민족주의가 사회 혁명에 일조하는 경우를 자주 보아 왔습니다.

맑스 레닌이 민족주의를 공격했다고 해서

몰역사적으로 모든 민족주의를 일체 시공간적 해석없이 공격하는 진보 세력은 없습니다.

 

다만, 민족주의가 위에 제가 열거했던 것처럼

아직도 대기업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외제를 놔 두고 질 떨어지는 국산 제품을 이용해 달라고 요구하거나

만주를 호령하던 광개토대왕의 되지도 않는 그림을 내세우며 기업 이미지 광고를 삽입한다든가

육사 내에 있는 민족주의 다물 그룹이 민족적 자긍심은 내팽개치고 소수의 엘리트 권력 모임화에 이용된다든가

만주는 우리의 고토이니 반드시 회복해서 중국놈 다 때려잡자는 식의 논리를 편다면

그리고 이런 의견들이 우리 사회의 보편 상식이 돼 버린다면

우리도 곧 파시즘의 사회로 직행할 때가 된 거겠지요.

 

사람들은 파시즘에 대한 역사적 공황장애 때문에 민족주의의 우경화를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당장 읽기 좋다고 다 진실은 아니며

피눈물을 흘리며 괴롭더라도 공부해야 할 것이 민중의 역사입니다.

 

대한민국 서민 중에 광개토왕과 DNA상 연결점을 찾을 수 있는 사람 거의 없을 겁니다.

고구려의 역사는

광개토왕 장수왕 문자명왕이 얼마나 강위력한 전사들을 이끌고 얼마나 광대한 영토를 넓혔느냐가 아니라,

고구려 지배층이 끌고 와 소처럼 토지를 갈게 하고 왕의 무덤을 지키는 수묘인으로 살게 했던

그 노예들의 삶이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출처 : 정봉주와 미래권력들
글쓴이 : 죄송이 원글보기
메모 : 2011 / 11 / 11 답글로 단 글, 괜히 쓴 글, 폐쇄공포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