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땅콩과자

전승물로서의 역사

죄송이 2015. 10. 9. 12:56

 

 

1.

 

동물은 보통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인식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자아'에 대한 개념이 없기 때문에

거울에 비친 동물을 '자기'라고 인식하지 못하고, 또다른 타자로 보는 거죠.

 

코끼리나 돌고래는 자아가 있어서

자신의 초상화를 그리는 코끼리도 있고

거울을 보며 맵시를 확인하는 돌고래도 ... 가끔은 ... 있다고 합니다.

 

인간 역시도 태어날 때부터 자아를 갖고 태어나는 것은 아니고,

학습을 통해 습득합니다.

이것이 잘 학습되지 못하면, 사회화 과정에서 곤란을 겪게 될 수 있습니다.

 

 

 

2.

 

'자기(己)'와 '타자(他)'에 대한 구분은

생물학적 이기주의와 이타주의의 적절한 구분짓기를 통해 생존의 방편들을 마련해 갑니다.

 

우리가 매일 숨 쉬는 공기는 '타'입니다.

그 속에 들어 있는 세균과 바이러스, 곰팡이 역시 '타'입니다.

음식 또한 명확한 '타'입니다.

 

그렇지만 물과 공기를 마시고

음식을 먹은 후,

이것들을 부시고 섞어서 물리화학적 합성 과정을 거친 후에야 내 것이 됩니다.

 

타자에 대한 자기화는 그렇게 녹록한 것은 아닙니다.

세균에 감염돼 패혈증으로 죽을 수도 있고

식중독에 걸려 장염을 앓을 수도 있습니다.

 

타자에 대한 경계는

이렇듯 생존과 직결되는 아주 미시적인 수준에서부터 몸에 배인 탓인지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3.

 

칼싸움의 역사로부터 상대방에게 안전을 확인시키기 위해 남자들이

악수를 한다든지 ( 칼을 안 쥔 빈손임을 확인시키기 위해 )

군대에서 경례를 한다든지 ( 경계를 풀고 투구의 눈가리개를 올린다는 의미로 )

심지어, 여자들이 만나면 얼굴과 옷, 가방, 자식 칭찬을 먼저 하는 것들까지

 

대부분의 사회적 에티켓들은 이런

타자에 대한 경계를 줄이고, '우리'라는 집단 자아의 확인을 통해

안심하고자 하는 약속들입니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밀한 경계는 절대 늦추는 법이 없습니다.

마치, 우리의 혈관 속에 면역 세포들이 단 0.01 초도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술을 마시고 스포츠를 즐기는 와중에도

은근히 서열을 정하고

가벼운 도발에 처절한 응징으로 맞서려고 노력합니다.

 

 

 

4.

 

체계적인 문자 기록이 갖추어지기 힘들었다고 판단되는, 선사 시대에

사람들은 주로 생존에 필요한 '기억들'을

선배가 후배에게, 말이나 그림을 통해 전달해 주었던 듯 합니다.

 

일단은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을 기억하게 하고

먹을 수 있는 것 중에서 다시 쉽게 잡을 수 있는 것과 대체로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을 나누고

지금은 안 보이지만, 봄이 되면 다시 나타나는 것들과

여기에는 없지만, 삼일을 북쪽으로 걸어가면 구할 수 있는 것들

그런 것들이 중요한 정보에 속했겠죠.

 

또 실제로는 맛이 없지만, 맛이 있는 것처럼 속여야 했기 때문에

여러가지 요리법도 개발이 되었을 겁니다.

 

잘게 찢어 먹어라,

익혀 먹어라,

이것과 저것을 섞어 먹어라,

어릴 때 따 두었다 말려 먹어라 ... ...

 

 

 

 

5.

 

'자아'를 갖추고 '내'가 '우리'가 되고,

다른 이에게 전달할, 정보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강조'의 필요성이 발생하게 됩니다.

 

선사시대의 암각화에는 이런 과정들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습니다.

 

 

동물 그림과 함께 한 옆에

사람의 손이 새겨져 있는 그림들이나,

밤하늘을 바라보는 왠 사람의 그림들이 있죠.

 

 

 

사람의 일부가 등장하는 그림들은

'바로 그 때, 그 곳에 내가 있었다'라는 증언이자, 자아의 확립을 품고 있습니다.

대부분 관찰자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이와 조금 달리,

동물들에게 활을 쏘는 매우 적극적인 참여 그림들도 있습니다.

 

내가 저 큰 동물을 잡았어 !! 라는 자랑과 함께

이런 걸 잡아야 좋은 거야,

그 옆의 작은 녀석들은 맛도 없고, 고기도 적고, 오히려 잡다가 내가 죽을 수 있어, 라는

매우 중요한 정보도 제공을 합니다.

 

 

 

사냥이 신사들의 게임인 스포츠로 바뀌고

단순한 식사가, 집단의 평화와 안녕을 기원하는 제의로 바뀐 것처럼

이런 정보들은 매우 뿌리 깊게 뇌리에 박힌 채, 후손들에게 전달됩니다.

 

 

 

( 고대 사회에서 중요한 정보는 첫머리나 마지막에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항상 정중앙에 위치했습니다.

수메르의 상형문자들로 이루어진 모든 점토판들이 앞뒤에는 거의 의미없는 반복 문구들로 채워지고,

중앙 부분에 작자가 하고 싶었던 기사들이 채워지는 것처럼 ...

 

위의 그림에서도 중앙의 무사는 ... 심지어 저 위험한 호랑이를 잡고 있습니다.

그의 용맹함은 후손들이 두고두고 기억했을 겁니다. )

 

 

 

사냥과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은

자신의 공을 과장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거대한 사슴의 머리를 박제해서, 거실 벽 한켠에 걸어 둔다거나

평생에 한번 잡은 물고기의 탁본을 떠서 액자를 만들어 두죠.

파타고니아나 마추픽추에서 자신이 등장하는 인증샷을 찍어 SNS 에 올리는 행위는

모두 선사시대부터 이어진 '기억'에 다름 아닙니다.

 

이런 굉장한 포획물을 남들에게 자랑하고

타자들로부터 칭찬과 경탄 ( 좋아요, 엄지 척 !! ^^ )을 얻지 못하는

대부분의 평범한 '우리', 일상의 주인공들은

그래서 매일 그렇게,

음식 사진을 찍어서 올리기에 바쁜지도 모르겠습니다.

 

 

 

6.

 

집단의 생존에서, 규율이 존재하는 이유는

장려해야 할 행동과 금지되거나 자제되어야 할 행동이 나뉘기 때문입니다.

 

내적 생산과 외적 방어에 뛰어난 구성원은 칭찬받아야 하고

사냥과 채집에 게으른 구성원은 배제되어야 합니다.

때문에 같은 집단 내에서도

구성원들 사이에는 서열이 존재하게 됩니다.

 

서열의 차이는 원래 의사 결정에서의 몫을 구분하기 위해 설정되었지만,

차차 분배되는 재화의 양에 차등을 두면서

보상의 크기 문제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보상의 문제에 집중해, 사회 구조의 변화를 설명하는 사회 이론은

흔히 경제적 토대(하부 구조)와

법과 이데올로기와 같은 상부 구조의 이중 구조적 믹싱으로 사회를 바라 봅니다.

 

하부 구조가 주로 당장의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상부 구조는 기억과 전승을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7.

 

카페 운영을 예로 들어 봅시다.

 

카페의 기존 회원들은 어느 정도 이미 집단화돼 있습니다.

신입 회원은 카페의 룰을 익혀야 하고

이런 글을 남기면 추천을 많이 받을 수 있다는 것과

이런 언행은 타자들의 경계를 살 수 있다는 것을 '경험'을 통해 익혀가야 합니다.

누구나 카페에 처음 가입하면,

일정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합니다.

 

실수를 줄이기 위해, 각종 공지글들이 존재하고

경계심을 낮추기 위해, 기존 회원들이 답글을 달아 줍니다.

 

상호의 주거니 받거니 행위를 통해, 관계를 형성해 나가게 됩니다.

모든 친목의 기본이고,

모든 집단의 형성 과정입니다.

 

카페의 종류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부분 허물 수 없는 원칙이 몇 가지씩 존재합니다.

'통과 의례'라고 부르는 것 말입니다.

 

- 이름, 성별, 나이 정도의 신상을 공개한다.

- 참여도 정도에 따라 회원의 서열을 나눈다.

- 조회수와 댓글, 추천수라는 보상이 주어진다.

- 게으른 자들에게는 '쌩깜'과 '열람금지'라는 처벌이 주어진다. 

 

 

 

8.

 

그런데, 좀 이런 원칙에서 벗어나 있는 카페도 있습니다.

 

방장과 운영진이 추장이나 장로로 대접받기는 커녕,

매일 회원들 뒤치닥꺼리 하느라 일상에 방해를 받는 카페도 있고

 

민주주의 원칙과 카페 회칙을 들먹이며

그야말로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오는 회원에 대해 아무런 제약도 가할 수 없는 카페도 있습니다.

 

카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행사란 이름의 카페 활동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야 하고

행사의 높은 참여와 이를 통한 성공을 위해

다양한 상부구조적인 툴들이 동원됩니다.

 

신입 회원이 줄을 이으면 카페의 생산력은 배가될 것이고 - 어차피 모든 생산은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

갈등이 생겨 기존 회원의 탈퇴가 더 많으면, 카페의 생명력은 다할 겁니다.

 

이 과정에서

무엇이 성공을 만들고 어떤 요소들이 실패를 유발하는가 ...

학습을 하게 됩니다.

 

많은 경험이 쌓이면서

사람들은 이제 문서화된 기록을 남기자고 동의하게 됩니다.

 

모범적인 집단의 성공 사례와 함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멸절한 집단의 기록들도 후대의 시선에서는

모두 똑같이 중요한 모의고사 문제집이 됩니다.

 

잡다한 자유게시판의 글들은, 문학사가 될 것이고

우리들의 사진에 찍힌 인물과, 음식, 풍경들은 생활문화사가 될 것입니다.

논쟁 게시판의 글들은, 정치사회사가 되겠죠.

소수의 운영진들만 읽고 쓸 수 있는 게시판이 있다면, 궁중비사 ... 정도 되려나요?

 

 

바야흐로 이제, 선사시대를 넘어 역사를 가진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9.

 

일요일 저녁, [김제동의 톡투유]를 시청하고 나면, 조금 기다렸다가

[역사저널 그날]을 마저 봅니다.

 

요즘 삼국시대를 중심으로 고대사를 훑고 있는데

그 첫번 째 주제는, 고구려 건국 시조 주몽이었습니다.

 

주몽의 신화는

부여의 건국 시조인 동명왕의 건국 시조를 완전히 표절한 것입니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신화적 행위를 통해 회임을 하게 되고 - 영웅의 출생은 남달라야 하니까요

어린 시절의 고초를 겪다가, 박해에 못 이겨 탈출하게 되고 - 배신과 독립의 정당성이 주어져야 하죠

건국 과정에서 대자연의 도움을 얻게 되고 - 생계의 혹독한 어려움이 잘 표현됩니다

드디어 초라하나마 자립을 시작하게 됩니다.

 

부여의 시조, 동명왕의 건국 설화를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후손들이 그대로 차용해다 쓰는데,

고려 시대, [삼국사기]를 저술한 김부식의 실수로, 이 둘이 하나의 인물로 합성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후대에 '동명성왕 주몽'이라고 병칭해 버리게 되었던 거죠.

 

고구려의 표절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

 

 

 

 

 

 

( 이하의 내용과 이미지 중에는 아래의 블로그에서 인용한 부분이 많습니다 )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otaejin6&logNo=40176777461

 

 

 

 

 

10.

 

장천 1 호분의 벽화입니다.

수렵도와 매우 유사한 구조의 사냥 그림인데,

 

재밌는 것은, 좌측 나무 속에 검은 음영의 동물이 등장한다는 겁니다.

곰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반면 호랑이는 벌판을 졸라 뛰어 댕기면서, 사냥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각저총의 씨름도입니다.

좌측에 또 이상한 모양의 나무가 한 그루 등장합니다.

 

이걸 의도를 가지고 복원하면, 아래와 같은 그림이 됩니다.

 

 

 

 

신성한 나무 아래에

곰과 호랑이가 등을 돌리고 서 있습니다.

 

하나는 포용된 종족이고

다른 하나는 배제된 종족입니다.

 

그러니까 이 신화는

단군 이야기에 등장하는, 곰과 호랑이 얘기를 연상시킵니다.

 

하늘의 후손들인 주인공들이 만주와 한반도 상부로 침입해 왔고,

마늘과 쑥으로 견디라는 요구 - 아마 경제적 조공과 정치적 지배에 대한 동의였을 겁니다 - 에 대해

굴복하지 않고 저항했던 호랑이 부족은 탄압을 면치 못했고

순응했던 곰 부족은 2 등 시민이긴 하지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졌던

실제 사실을 응축하고 있는 신화일 겁니다.

 

 

 

 

 

11.

 

주몽의 후손들이 봤을 때,

동명왕의 신화에 자신의 시조를 합성하는 행위는 매우 유익한 것이었을 겁니다.

자신들조차 익숙한 전형적인 영웅 히스토리인데다가

누구나 인정하는 영웅의 적통임을 만 천하에 공표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의 신들이 모두 로마의 신들로 바뀐 것이나

인도의 토착 신들이 정복자들에 의해 힌두교의 신들로 바뀐 것이나

그리고 이집트의 태양신이 성경의 여호화로 바뀐 것,

다시 예수가 이슬람의 마호멧으로 거듭나는 것, 모두

 

영웅은 끊임없이 만들어지지만, 표절에서 단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 '역사는 승자의 기억'이란 표현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리스의 입장에서는 로마에게 신들을 강탈당한 것이었고

부여의 입장에서는 고구려에게 시조를 빼앗긴 것이었지만,

역사의 한 시점에서 아무도 그들이 그리스의 신이었고 부여의 시조였다고 말하는 이는 없었을 겁니다.

 

다행이었는지 ...

세월이 다시 흐르고, 어떤 복원의 노력에 의해

다시 또 역사와 신화는 제 주인을 찾아 갔습니다.

 

우리의 빼앗긴 문화재와 역사 또한 언젠가 후대에는 다시 돌아올 것을, 그런 의미에서 믿습니다.

 

 

 

 

12.

 

하지만 끝내 추억되지 못한,

자신의 기억을 후대에 전승하는 데 실패한 집단도 존재합니다.

 

호랑이 부족은 언뜻 신화에서 희미하게 등장하기는 하지만,

승자에게 철저히 대상화되어 주체성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우리는 호랑이 부족이, 평소에 무엇을 먹었고

무슨 장신구를 만들어 썼으며

결혼하면 자식을 몇이나 낳았는지 알 도리가 없습니다.

 

호랑이 부족의 영웅들조차도, 기억되지 못합니다.

어쩌면 호랑이 부족의 영웅들은 이미 고구려의 영웅들로 녹아 들어가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인간의 자아는 집단을 통해 드러납니다.

완벽한 개인은 역사를 구성할 수 없죠.

 

복면가왕에서 두 가수가 경쟁해, 각각 50 표와 49 표를 얻었습니다.

한 가수는 다음 스테이지를 누릴 수 있지만, 다른 가수는 퇴장해야 합니다.

이 때, 사회자는 말합니다.

 

' 누군가 단 한 명의 선택이 승패를 갈랐다 ' 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정확히 틀린 말입니다.

어느 순간에서고, 배신자의 행위나 영웅의 사적이 역사를 극적으로 구성한 일은 없었습니다.

매우 우연적으로 보이는 상황에서도

단지 ...

 

50 명의 단결이 49 명의 단결을 매번 이겨왔을 뿐입니다.

 

 

 

 

 

역사에서 개주얼 서스펙트는 없습니다.

 

스텝의 거대한 사냥꾼들을 피해, 동굴 속에 숨어 지내며 살았던 인류의 조상들이

다음 봄에 먹을 것이 생긴다는 것을 믿지 않았다면

그리고 그것을 후손들에게 기억시키지 않았다면

 

우리가 지금 자유게시판에서 정권의 만행을 비판할 수 있는 호사는 절대 누리지 못했을 겁니다.

 

얼마 전이 추석이었고, 며칠 전은 개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한글날이네요.

 

저 먼 선사시대의 조상들에게 감사의 건배를 합시다 ^^  

 

고수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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