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觚不觚 觚哉觚哉
자왈 고불고 고재고재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고 그릇에 모서리가 없으니 고라 부를 수 있겠느냐
........................................................................
'고'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있습니다만
아마도 문장이 짧아서 갈래진 해석이 많이 나오는 모양입니다.
그냥 이 구절은 제 식대로 해석할께요~
이런 그릇들을 '고'라고 부른 것 같습니다.
사각도 있고 육각도 있고 팔각도 있는데
어쨌든 도자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판축의 형태로 흙을 얇게 만들어 서로 이어 붙이는 방법으로
그릇을 만들던 시기가 있었겠죠.
이런 그릇들의 이음새 부분은 '능' - 모서리를 형성하게 되는데
이런 모서리가 있는 그릇을 '고'라고 부릅니다.
물래가 발달하면서 도자 기술은 거의 혁명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더 단단한 그릇을 더욱 견고한 곡선 형태로 빚을 수 있게 되었는데
가마에 구워도 능이 있는 그릇들보다
높은 온도에서 터짐 현상이 덜 발달하게 되었던 것이죠.
시대가 후대로 오면서
초기에 사용되던 '고' 들은 점차 자리를 잃게 되었고
이런 일반적인 '작'으로 대체되었을 겁니다.
공자가 단순히 옛것을 고집하는 '호고주의자'여서
실용성과 심미성이 모두 조금씩 떨어지는 '고' 그릇을 고집한 건 아닙니다.
제사에서 '고' 그릇을 쓰는 것은 그 사각의 모양을 통해 사방을 살핀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다만 실용성만 추구하느라 더이상 굽게 되지 않는 '고'를 내다 버리고 모두 '작'으로 바꾸어 버리면
원래의 그런 의미도 손실될까 걱정하는 겁니다.
유홍준 씨가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책이 문화적 갈증에 시달리던 사람들의 마음을 어느 정도 채워 줬던 적이 있습니다.
그 책을 단 한 구절로 요약하면 ' 우리 문화재의 아름다움은 아는 만큼 보인다 ' 일 겁니다.
문화를 보는 태도는 언제나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의 실용성도 매우 중요한 부분이긴 하지만,
그래서 수세식 화장실이 요강을 대체하는 것이 당연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직도 구순 노 할머니의 방 윗목에 요강이 남아 있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손주 며느리와
그 이유를 알고 있는 시어머니 사이에는
요강에 대한 태도가 남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마시는 유리잔에 그려진 문양들이
불과 500 년 후에도 후세인들에게 동일한 이미지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있습니까?
만약 세대를 뛰어넘는 이미지의 전승이 가능했다면
우리가 조선 시대의 복식사를 따로 연구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조상들의 서간문 하나를 읽기 위해 국어 시간에 고문을 배울 필요도 없었을 겁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작금의 세태를 한탄할 때는 어느 정도 우리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감상이 있을 겁니다.
이유있는 한탄들이란 말씀입니다.
그냥 쉽게 넘겨 버리지 마시고, 자주 들어 두면 좋은 이야기들이 보석처럼 들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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