ㄴ 비극의시대

무한도전 유감

죄송이 2011. 2. 13. 01:54

 

 

나는 무한도전 광팬까지는 아니고 그저 즐겨 보는 정도의 사람이다.

그나마 TV가 없는 관계로 정규 방송일보다 이삼일 지나서, 얼마간의 컨텐츠 이용료를 지불하고 다운받아서 본다.

나는 멤버들이 소를 끌던 '무리한 도전' 시절부터 보던 사람도 아니다.

솔직히 뭐 저런 미친 짓들을 하나 싶어 언뜻 보다가는 다른 채널로 돌리고,

무엇보다 정준하를 바보 만드는 게 싫어서

초반에는 잘 보지 않았다.

나는 그냥 그 정도의 무도 시청자였다.

 

그러다가 김태호 pd가 만들어 내는 자막들이,

거창한 사회적 실천을 내세우진 않지만, 재밌는 방식으로 사회와 나누는 행동들이

진실로 의미있는 진지한 고민들의 과정이자 결과물이었다는 점에서

무한도전을 전혀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었다.

 

민주노동당을 탈당한 후 

진보신당에 잠깐 엉거주춤 자리를 깔아 보려다가

동맥경화 뺨치는 맹동주의적 경색에 놀라 그마저도 탈당한 이후의 시간동안 줄곧,

그리고 아직도 죽은 노무현의 피를 빨아 진보를 자처하며 권력과 부에 이빨질해대는 자들에게 한숨만 나오는 이 시절 내내,

내게 있어서 무한도전은 솔직히 칠성사이다보다 시원하고 꿀물보다 달았다.

 

 

 

오늘 모처럼 처가에 들렀다가 생방^^으로 무한도전을 시청했다.

무한도전 전반부의 시작은 재밌기는 했지만,

글쎄~ 북극의 눈물과 아프리카와 아마존의 눈물을 패러디해 특집까지 제작하면서

보일러 끄고 외출하자고, 샤워는 5분 이내로 하자며, 자못 진지한 환경 문제와 관련된 가장 실천적인 고민을 던져 주었던 무한도전이

오늘은 강원도 평창의 동계 올림픽 유치를 지원하는 특집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다소 경악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전혀 무감각했던 분이시라면 평창 올림픽이 환경 파괴에 미칠 영향을 다룬 기사 몇 가지를 참조해 보시는 것도 좋겠다.

 

뭐, 환경 문제는 그렇다 치자.

대다수의 사람들은 환경 문제나 생협, 유기농의 문제들을 배부른 좌파 정도의 문제로 바라보곤 하니까.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실천하고 고민하는 남들을 '배부른 놈들' '좌파 빨갱이들'로 매도해서 잊고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많으니까.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해 본다.

월드컵은 국가별로 유치한다. 프랑스 월드컵, 남아공 월드컵 ... 이렇게 부른다.

올림픽은 도시별로 유치한다. 서울 올림픽, 솔트레이크 동계 올림픽 ... 이렇게 부른다.

개발독재 시절을 한참 지난 후까지도 단물 빠진 스포츠 마케팅에 현혹돼

적자가 나는 것을 알면서도 유치하던 게 올림픽이고 아시안게임이었다.

지역민의 희생뿐 아니라 전 국민의 혈세를 빨아내

국내 자본은 물론이고 거대 다국적 자본들에게까지 아낌없이 단물을 갖다 바치는 것이 바로 올림픽이고 월드컵이다.

 

평창에서 동계 올림픽이 열리면,

전 세계에서 관광객들이 몰려와 마을마다 있는 허름한 동네 슈퍼에서 새우깡이라도 하나 사 먹을 것 같은가?

아니면 민박집에서 삼사일 묵으며 주변 경치라도 감상하다 갈 것 같은가?

어차피 그들은 화려한 리조트에서 묵으며 새로 지은 관광지들을

서울에서 공수한 관광업체 차량에 올라타 여행할 것이다.

1988년 서울에서 올림픽을 열겠다고 얼마나 많은 가옥들이 철거되고 사람들이 쫓겨났는지 모른다.

비슷한 일은 제 3 세계 국가에서 항상 일어난다. 베이징 뒷골목들도 박살이 났었다.

 

'외국인들의 수준'을 운운하며 강원도 관계자들은 동네 수퍼를 헐고 편의점으로 탈바꿈시키거나

동네 민박집들에게 상당히 높은 수준의 숙박 기준표를 들이대며 신장개업을 위해 은행빚을 내라고 강요할 것이다.

경비업체를 늘리고, 카드기를 설치해야 할 것이다.

 

경기장은 국민의 세금으로 지으면서

이익금은 조직 위원회에 상납할 뒷돈으로,

유치를 위한 로비자금으로,

그리고 광고에 열을 올린 흥행사들의 수익으로 갈갈이 찢겨져 되돌아갈 것이다.

 

물론 스포츠 자체는 재미나고 아름답고 감동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 흥행을 만들어 내는 올림픽이나 월드컵을 두고 오가는 돈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동계 올림픽은 한 도시에서 열린다.

온 나라가 나서서 유치를 지원하며

무슨 대단한 일인 양, 국운을 건 천년의 계획인 양 달려들 일이 전혀 아니다.

평창이나 강원도가 알아서 할 일이다.

무주나 전라북도가 알아서 할 일이다.

실제 이익도 없는 사업을 뻥튀기시켜서 포장할 때는

과연 감동과 눈물 뒤에서 누가 억만금의 돈을 벌어들일지 한번쯤 고민해 봐야 한다.

지역 주민 몇 만명이 나눠 받아야 할 이익을 어떤 대기업 하나가 독점하는지 고민이나 해 보면서

프로그램을 만들더라도 만들면 어떨까 싶다.

 

 

 

그리고 좀 이야기가 새는데,

내가 길을 밉상으로 보긴 한다.

내가 보기에 길이 밉상인 이유는 ... 정확히 말하면 그가 그렇게 열심히 촬영에 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길의 행동을 가끔씩 보면, 그는 큰 시련없이 편하게 살아온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그다지 열정이 없어 보여서 싫다.

 

박명수는 한결같진 않지만 프로그램을 위해 자신을 버릴 때가 많다. 그래서 늘 밉상은 아니다. 그리고 종종 입바른 소리도 할 줄 안다.

노홍철은 열심히 사기를 친다. 방어기제가 많아서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진 않지만 맡은 일에서 빠지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정형돈과 정준하는 뭐랄까, 스마트함보다는 우직함이 앞서는 편들이다. 열심이다.

하하는 뭘 해도 미움을 덜 받아서 이익을 보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역시 노력한다.

유재석은 이 인간들을 묶어서 한편의 드라마를 만들기 위해 조금도 쉬지를 않는다. 유재석에게 노력 운운하는 것은 절대 가당치 않다.

 

길은 뭐냐?

도대체 뭐냐?

무한도전에 나온 길에게서 가장 의미 심장하고 재밌었던 특집은 ... 오줌싸개, 죄와 길 뿐이었다.

죄와 길 특집에서 길이 한 것은, 단지 오줌싸기 뿐이었다. 그리고 한번 망가져 준 것 뿐이다.

더이상 노력하지 않을 꺼면 떠나는 것도 좋다.

 

길은 매우 우유부단한 사람인 것 같다. 

양지를 좋아해서 음지를 거니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고,

힙합을 하긴 하지만 배고픔을 싫어하는 사람이고,

사랑을 찾긴 하지만 지키는 데 금방 실증내는 사람이다.

무언가 돈과 권력을 적극적으로 쫓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지만

자기가 해야 할 몫이 무엇인지 정확히 이해하면서 열심히 그것을 수행하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예전에 '공무원'이라고 불렀다.

비슷한 예로 '교사'들이 있다.

뭐, 사실 수많은 '회사원'들도 마찬가지다.

'의사' '변호사' '판검사'라고 다르겠는가?!

밥그릇만큼 일 못하는 사람들은 이 사회 어디에나 널리고 널렸다.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지만 주는 월급 감사히 받는다.

그러면서도 정작 회사를 떠날 용기도 없다.

사람이 추잡스러워지는 이유는 용기가 없을 때이다.

많은 사람들이 길처럼 살면서 길을 미워한다.

나는 단언한다.

길은 무한도전에서 떠나라는 말이 나올 때까지는 자신이 용기내서 떠나지는 않을 사람이다.

그리고 용기를 내지 않는 한, 끝내 길은 그 어떤 발전이나 성취도 얻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종종,

최근 길의 진행이나 참여가 많이 좋아졌다고 말하는 것은

아마 연애가 깨지면서 동정론이 확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역시 다른 멤버들의 좋은 이미지를 전혀 자신의 노력의 의하지 않고 외부효과로 전취해 온다는 점에서 비난받을만 하다.

불법은 아니지만 얍실한 행위인 것만은 사실이다.

삼성을 먹여 살리는 것은 수많은 하청 업체의 공장 노동자들이다.

서류나 까스르면서 야근이나 한답시고 새벽 한두시에 회사에 다시 나가는 사람들,

그러면서 나도 삼성맨입네~ 하는 사람들은

다른 노동자들의 외부효과를 필요 이상으로 전취해 오는 얍실맨들이다.

한국은 삼성이 없어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이 있어서 재미없어지는 것이다.

 

 

 

김태호 pd는 아무리 외모가 PD처럼 생기긴 했지만

속내는 NL 혹은 IT에 가까운 것 같다.

 

'못하더라도 함께 가자'고 자막을 달았는데,

종종 그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안 될 때도 있다는 것, 그도 알고 있겠지만 이 경우가 아니었나 싶다.

평창 동계 올림픽 유치를 위해 전 멤버들이 눈밭 경사를 올라가 깃발 하나 뽑는 게 뭐가 그리 대단할 것이며,

길처럼 게으른 자를 굳이 같이 오르자고 하는 것이 뭐가 그리 감동스러울 것인가?

 

화면에 언뜻언뜻 비치길,

멤버들이 아이젠까지 차고도 설설 기는 그 어려워보이는 50도나 된다는 경사를

카메라맨들은 버젖이 서서 촬영하고 있더라.

카메라 각도만 어지러이 잡았을 뿐, 그렇게 심한 경사도 아니었다.

이번 편은 거품이 좀 심했던 것 같다.

게다가 길은 그렇게 끝까지 데려가면서 왜 형돈이는 안 데려 갔는가?

길과 형돈이의 발목이 모두 상태가 좋지 않았다면

그 둘을 썰매에 태워 끌고 올라갈 수는 없었을까?

황소도 끌었던 사람들이었는데 돼지 둘 정도 태운 썰매 못 끌 게 또 뭔가?

별로 감동스럽지 않았던 상황을 지나치게 요란하게 장식했던 것 같다.

자꾸 하면 사실 무뎌진다.

쉴 때가 되었나?

그냥 진지하게 물어 본다.

 

유재석이 나중에는 길에게 약간 짜증섞인 목소리로 호통을 치는데

문득 이런 생각도 들더라.

씨바~ 총알 날아다니는 전투 상황이었으면

길은 저 삔 발목으로도 혼자 살겠다고 벌써 개인 참호 1m는 파고도 남았고,

저따위 언덕 같지도 않은 등성은 벌써 기어서라도 올라 가고도 남았을 것이다 ... ...

 

사람들은 유재석을 칭찬하기에 여념이 없는 듯 하지만

유재석같은 선한 병장도 교보재 창고에서 후임병의 조인트를 까대는 나쁜 군바리로 탈바꿈시키지 않으려면

진정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 같다.

 

오늘 무한도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 pd가 나쁜 사람이네~ "

 

ㅋ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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